226기 동기 김태진의 죽음....작업중 잠시 찰칵~! 김태진(226), 나, 신현기(230) 왼쪽 태진이 뒤쪽으로 보이는 것이 마리아 성당이다. 1971년 8월 4일, 그날은 중대 방석내의 낡은 유선 정리와 3선철조망밖에 묻혀 있는 미진탐지기의 센서(돼지발톱이라 불렀다)의 점검 및 재 매설을 하기로 되어 있는 날이었다. 팀을 둘로 나누어 나는 유선정리 작업조, 태진이는 돼지발톱 작업조에 배정되었고 오후에는 두 조가 서로 맞바꾸어 작업을 계속하기로 했다. 유선정리작업이란 방석 내 땅속에 파묻은 전화선 외에 특별히 10여개의 중대 외곽 중요 초소와 중대 상황실과의 비상 신호선(전화 대신 램프를 점등하는 스위치로 비상을 알리는 장치 - 전화보다 빠르다.)까지도 고장 난 것을 고치는 일이었는데 전임자들이 남겨놓은 결선도가 없어 일일이 다시 그려가면서 구성을 파악, 이해를 한 다음 수리를 해야 하니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었다. 오전 내내 작업하여 겨우 구성을 이해할 정도였다. 이대로 돼지발톱 팀에게 넘겨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점심식사를 하며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갔고 오후에 작업팀을 맞바꾸는 것은 무리가 있으니 그냥 오전에 하던 대로 계속하기로 했다.

오후 작업이 계속되었다. 작업 중 가끔 허리를 펴고 저쪽을 보면 3~40미터 떨어진 저쪽 비탈에 태진이 조가 열심히 파고 묻고 삽질하는 것이 보였다. "야~! 요령피지 말고 열심히 해~!" "또록또록~!"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열심히 작업을 서둘렀다. 어둡기전에는 끝을 내야 했다. 그러던 중 오후 4시쯤 되었을까? 별안간 태진이 쪽에서
쾅~!   폭발음이 들려왔다. 순간 사고다~! 생각하고 고개를 드는 순간 높이 솟은 시커먼 연기 속에서 뭔가 큰 덩어리가 휙~ 날아 그 옆 비석 쪽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손에 든 것을 팽개치고 그 쪽으로 달려 갔다.  방금 본 비석 쪽으로 정신없이 철조망을 넘어 가는데 통신반장 반덕주 하사가 나를 보더니 "태진아~! 태진아~!" 하며 울부짖었다. 아! 태진이가 당했구나!  이럴 수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미친 듯이 1선, 2선, 3선 철조망을 넘었다. 저만치 태진이가 비석옆에 업드려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아! 그게 아니었다. 가까이 가보니 전신이 산산조각이 난채로 엉켜 있는 것이었다.동작동 국립묘지
저 위 철조망 안에서는 폭발음에 놀란 중대원들이 몰려와 철조망 아래쪽을 내려보고 있었다. OP 및 초소의 관측보고를 받고 중대장도 뛰어 나왔다. 어느 하사(민사 하사였는지??)가 들 것을 가지고 철조망을 넘어왔다. 시신을 후송할 때 늘 하듯이 들것위에 판쵸우의의 절반을 편 다음 그 위에 태진이의 시신을 하나하나 정성껏 옮겼다. 아직도 식지 않은 태진이의 체온과 냄새를 느끼며 정성껏 옮겼다. 손톱이 망가지도록 박박 긁어 담았다. 상당 부분이 모자랐다. 우리는 그 부근을 샅샅이 뒤졌으나 폭발시 공중분해 되어 사라진 일부분은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판쵸의 나머지 반으로 들것을 덮고 그 하사와 들고 움직이려는 순간, 지뢰다~! 하는 외침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매설된 지뢰를 발견한 것이다. 모두들 아래를 살폈다. 그 주변에서 모두 4~5개의 지뢰가 발견되었다. 매설 위치 표시가 전혀 없는 지뢰들.... 그것은 옛날 프랑스군이 매설해 놓은 지뢰였다. 그 지뢰에 태진이가 희생된 것이었다.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려 서있기도 힘들었다. 이렇게 위험한 지뢰밭을 우리는 정신없이 뛰어 다녔던 것이다. 겨우 정신을 차려 태진이를 들고 3선, 2선, 1선 철조망을 넘어 안으로 들어왔다. 언제 왔는지 하늘에는 건쉽이 주위를 돌고 있었고 헬기장에는 벌써 메드백 헬기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태진이를 메드백 헬기에 올려놓고 돌아서는 순간 그동안 참았던 온갖 설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올라 나는 그냥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바로 1971년 8월 4일이었다.
태진이는 진해 통신교육대에서 행사부대에 뽑히지 않아 바로 실무부대로 배치 받아 갔었고 실무부대로 가자마자 바로 월남으로 오는 바람에 나보다도 2진(6주) 먼저 월남에 와서 2대대에서 근무 중 내가 6중대로 가자 나와 같이 있겠다고 6중대를 자원하여 쫒아 왔었다. 중대에서는 우리를 쌍둥이 같다고 놀려댈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어머니가 독일에 간호원으로 가 계시다고 했다.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사연들로 인하여 태진이를 잃은 슬픔은 나에게는 누구보다도 컸다.  다음날 나는 태진이의 유품들을 눈물을 흘리며 아주 정성드려 상자에 담아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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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죽음 당할뻔....

전쟁터에서 통신은 철저한 보안 속에 이루어져야 함은 상식이다. 그러기 위해서 중대급에는 음어자재와 COI (통신운용규정) 두 가지의 비밀문건이 있었다. 이중 음어자재는 10일마다 새로운 것이 지급되고 먼저 사용하던 것은 자체 소각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COI 는 한달에 한번 교체되는데 쓰던 것은 반드시 반납하도록 되어 있었다. 언젠지는 확실치 않지만 통신반장 반덕주 하사가 사용이 끝난 음어자재를 소각하다가 무심결에 COI 까지 태워 버렸다. 혼자 고민고민하던 반장은 그 독한 월남 럼주를 마시며 불안한 마음을 달래다가 결국에는 그만 술에 취해 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상황실 근무자 제외 전원 빤쓰바람 통신제1벙커 앞으로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는 우리는 잽싸게 빤스바람으로 집합했다. 집합하면 해병대 이상 빠른 군대가 또 어디 있을까^^  통신제1벙커는 통신반 모두가 식사를 하는 식탁이 있는 곳으로 벙커 뒤 절벽위에는 60mm 박격포반이 있었고 앞에는 식탁, 그 아래는 낭떠러지 축대였다. 축대 한쪽에는 전에 내가 쓰레기를 태우다 총알을 맞은 쓰레기장이 있었다. 벙커는 한쪽으로 쑥~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보이지 않았다.
반장은 술에 취해 있었고 집합한 우리를 보더니 '내가 태웠어~, 내가 태워 버렸어~' 하고 중얼대더니 벙커에서 마시다 만 술병을 가지고 나와 또 한모금하는 거였다. 영문을 모르는 우리는 아주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반장은 술병으로 식탁을 탁~! 내려치며,상황실 근무중이었는지 박삼례(225기) 수병이 빠진 통신반 전원, 뒷줄 왼쪽부터 통신반장 반덕주 하사, 나, 신현기(230기), 최철식(225기), 양재천(226기) 앞줄은 ???, 윤상주(231?), 양선우(226), ???... ㅠ.ㅠ

야, 윤종태!   네, 상병 윤종태!
난 어떻게 하면 좋으냐~?    ???
최철식 !     네, 일병 최철식!
난 어떠카면 좋으냐구~!   잘  모르겠습니다!
뭐? 잘 몰라? 그럼 너, 신완식!    네, 일병 신완식!
너두 몰라??    네,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술에 취한 반장한테 당하기 시작했다. 반장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취해 가고 그럴수록 더 황당한 말을 해댔다. 다시 벙커에 들어가더니 이번엔 M16소총과 실탄이 가득한 탄창을 한 개 들고 나왔다. 우리는 더욱 불안에 떨었다. 반장은 비틀거리며 탄창을 M16에 철컥~! 집어넣었다. 우리는 더 놀랬다. 반장은 노리쇠 손잡이를 잡고는,

너!    네, 상병 윤종태!
이게 뭐야?   노리쇠 손잡이입니다!    
이번엔 그 옆으로,
너!   네, 일병 최철식!
이거 땡겼다 놓으면 어떻게 되나??    실탄이 장전됩니다!

반장은 잡았던 손잡이를 쑥~ 당겼다 놓았다. 철컥! 하고 실탄 한발이 약실로 들어갔을 것이었다. 반장은 술 한 모금을 더 하더니 비틀거리며 노리쇠손잡이를 또 당겼다가 놓았다. 약실에 들어 있던 실탄 한발이 튀어 나왔다. 새로운 실탄이 약실에 들어갔을 것이었다. 이번에는 그 M16소총으로 식탁을 탁탁~! 내려 쳤다. 그러더니 갑자기 M16을 허리총자세로 나를 겨누더니 급기야는 잠을쇠 스위치를 푸는 것이 아닌가??

너~ !    네, 일병 신완식~@.@~!
이거 땡기면 어떻게 되나??    격발됩니다~@.@~!   
총구는 다시 옆으로 향했다.
너~!    네, 일병 신현기~@.@~!
격발되면 어떻게 되나??  
죽습니다~@.@~!  
다시 옆으로,
너~!  
  네, 일병 xxx~@.@~!
난 어떠커냐~ !    잘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언제 끝이 날건지, 차라리 반장 속이 풀릴 때까지 실컷 두둘겨 맞고 빨리 끝났으면 좋으련만...
위험한 집합이 계속 되었다. 술 취한 반장이 자물쇠 스위치를 연발로 제끼고 손가락을 방아틀뭉치에 넣었을 때는 정말 하늘이 노랗게 보일 정도로 아찔했다. 총구가 나를 향했을 때의 그 아찔함은 내 글 솜씨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저러다가 실수로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면 누군가는 개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총구가 나한테서 멀리 돌아갔을 때 반장을 덮쳐볼까 하고 생각했다. 내가 빠를까? 아니면 반장이 더 빠를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때 벙커 위 절벽위에서 2소대 3분대장(문 하사였는지???)이 우연히 낭떠러지에 바짝 다가섰다가 아래에서 벌어지는 괴상한 집합을 보게 되었다. 통신반장이 통신병들을 모두 모아 놓고 총으로 위협을 하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계속 지켜보던 분대장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채고 저 아래로 105mm 포 진지를 돌아 우리가 괴상한 고문을 당하고 있는 통신 제1벙커로 접근하여 동태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상황은 계속되고 있었다.

너~!    네, 일병 xxx ~@.@~!
난 어떠커냐~!    잘 모르겠습니다~@.@~!

분대장은 통신반장에게 들키지 않도록 하면서 벙커 옆에 바짝 접근했다.
우리들은 분대장을 볼 수 있었지만 통신반장은 분대장을 볼 수 없었다. 통신반장이 언제라도 방아쇠를 당길 위험이 있으므로 분대장은 기회만 노리고 있었고 우리들은 이 위기를 탈출할 한 가닥 희망을 갖게 되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통신반장이 분대장과 정 반대방향으로 몸을 돌린 것이다.  분대장이 잽싸게 다가가 먼저 M16 소총부터 빼앗아 멀리 하고는 반항하는 통신반장을 힘 반, 말 반으로 어렵게 제압하는데 성공하였다. 상황이 끝난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기진맥진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다음날 술이 깨고 이성을 되찾은 반장은 중대장에게 자진신고를 했고 중대장은 상급부대에 신고, 보안대가 급히 날아오고 비상이 걸렸다.
현지조사를 마친 보안대는 반장과 230기 신현기를 데리고 헬기로 떠났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음어자재와 COI가 헬기로 공수되어 왔다. 이 긴급 교체는 청룡부대뿐만 아니라 전 주월한국군에게 적용되는 것이라 했다. 다음날 반장과 신현기가 돌아 왔는데 말은 안하지만 무지 혼난 것 같았다.
그 착하고 순한 반장을 그렇게 만든 것은 오로지 술, 술~! 때문이었다. 얄미운~ 술...  그래도 좋은~ 술...~@.@~

실탄이 장전된 총구가 나를 향하고 있을 때의 그 섬뜩함을 직접 당해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로부터 30년후 인터넷 덕분에 알게 된 225기 최철식 수병의 말에 의하면 그때 내가 눈치를 보아 반장을 덮치겠다고 했는데 너무 위험해서 자기가 만류했다고 했다. 내가 그때 그런 생각을 한걸 보면 그때는 겁 없이 혈기 왕성했었나 보다. 모르긴 해도 그때 집합을 당했던 우리들 중 쫄병 한 둘은 빤쓰(요즘 발음으로는 팬티^^)에 쉬~~를 지렸으리라 ㅋㅋㅋ ....

여기에 225기 최철식 수병이 최근(2001.10.18) 나한테 보낸 메일 중에 위의 사건에 관한 것이 있어 수정 없이 그대로 옮겨본다.
그때의 아찔함이 잘 나타나 있다.

통신BUNKER에서 있었던 반외덕하사의 사건등은 너무나 SHOCKING한 사건이나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야외식당을 만들기위해 4POINT에 설치된ANGLE철주가 있었는데 그총구멍이 내앞으로 겨누어 오니까 그총구멍을 피하기위하여 의식적으로 철주뒤로 자세를 조금씩 움직이곤 하였다오.왜냐하면 총이발사되면 직접적으로 총알이 내앞으로는 오지않을까하는 본능적인 감각이였다오.지금생각하면 철주폭이 50MM도 되지않아.총이발사되면 피할수도 없는처지인데말이요.그당시에 내가 제일선임수병으로 알고있는데 모두꼼작없이 서있는순간에 신수병이 작은소리로 반하사가 술이 꽤취해있으니까 덮쳐서 M16총을 빼았으면 어떨까하고 묻길래 깜작 놀랐다오.자세을 가누기도 힘던상황인데 덮쳤다하면, 정말 큰사고가 나기십상이었던 순간이었소. 지금도,나말고 혹시 다른사람이 그자리에서,그러한 상황에 처해있었다면 만일그렇게 행동했었더라면 어떻개 되었을까하고 이따금씩 생각이나오 아마 지금이렇게 옛날생각하며 신수병에게 E-MAIL을보낼 즐거운시간도 없었지않나 생각이더오.

이때 우리를 구해 줬던 분대장을 제대 후 한 번 본 적이 있다. 언제 어디선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70년대 중반 월미도 동원훈련장이 아니었던가 싶다....

또 엊그제(2001.11.16), 내 홈 게시판에 바로 이 반덕주 하사에 관한 글이 올라왔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여기 관련된 부분만 그대로 옮긴다.

하사관120기 김상규 입니다.월남전 수기중 반가운 이름 반덕주님.그분은 78년도 저와 같은 32대대에 근무를하고(반덕주님은본부중대,저는 화기중대) 전역도 78년 11월말 같은날 저와 함께하였습니다.선배님 기억대로 그분은 정말로 순진하고,착하고,마음씨가 좋은 분이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반덕주님(32대대 통신선임하사로 중사전역)의 소식은 아쉽게도 저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병대 출신들은 언젠가는 꼭 한번씩은 만난다" 라는 말이 있지않습니까? 언젠가는 그리운 사람들을 모두 만나는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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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월남 주민들의 배
우기철(5월~10월)이 되자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왔다. 며칠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쏟아지기도 했다.

이때 매복조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른 땅보다 젖은 땅을 파기가 수월한 것을 빼고는 모두가 최악의 조건이다.
너무 어두워 눈을 뜨나 감으나 똑같다. 판쵸우의에 떨어지는 요란한 빗소리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참호에 물이 차서 들어가 있기도 괴롭다. 에라~ 죽기를 각오하고 참호 밖 바닥에 그냥 올라앉는다. 또, 춥기는 왜 그렇게 추운지....

 중대 주변 마을에는 우기철에 물이 차오르는 것을 대비하여 집집마다 조그만 배를 가지고 있다. 언젠가 비가 오랫동안 계속해서 내려 물이 불어나자 주변 마을 주민들은 저마다 배에 중요한 살림을 옮겨 주변 높은 지대로 피신을 갔다. 물이 점점 불어나서 대대와 5중대 방석이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하자 모두 우리 6중대로 피난을 온 적이 있었다.  물이 다시 빠져 돌아갈 때까지 온 중대가 시골 장터같이 아주 시끌벅적 했다.
특히 그동안 무전기 교신으로만 알고 지내던 동기들도 홍수덕분에 직접 만날 수 있어 참 좋았다.

이때 대대소속인 어떤 하사가 날 찾아와 내가 어렵게 한푼 두푼 돈을 모아 산 스테레오 앰프/리시버 세트를 빌려 달라고 했다. 난 처음엔 단호히 거절했지만 결국 공갈협박에 어쩔 수 없이 빌려 주었는데, 다음날 그 하사는 그걸 노름으로 날렸다고 하면서 귀국하기 전에 꼭 갚겠다고 약속했는데 지금까지 받지 못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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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준비--철수--귀국....

1971년 가을 무렵, 월남에서 한국군이 철수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또, 철수는 한국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캄보디아 국경으로 이동한다고 했는데 그곳은 월남보다도 더 위험한 곳이라고도 했다.
좀 더 지나자 곧 귀국이 금지될 거고 따라서 신병도 오지 않을 거라는 소리도 들렸다.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고 소문만 무성했다.
작전도 뜸해 졌다.
그러다가 철수소문이 사실로 확정 발표되었다. 캄보디아국경 행은 아니었다. 철수는 전 주월 한국군 중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 위치한 부대인 우리 2대대가 제1진으로 제일 먼저 한다고 했다. 월남에 온지 일년이 넘어도 귀국이 금지되었고 월남 신병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철수일자가 12월04일로 잡혔다. 내가 작년에 부산항을 출발한 날이 10월26일이니까 철수만 아니라면 10월 21일에 귀국선을 타서 10월26일 부산항에 도착하는 건데 약 한달반이 늦어지는 것이었다.
철수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모든 군수물자에 대한 재물조사가 진행되었다. 모든 군수물자는 미군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에 미군에 제출되어있는 서류와 맞아야만 했다. 많아도, 모자라도 안 되었다. 나무상자에 넣어 미군의 확인을 거친 후에 바로 봉인했다. 그때 참으로 아까운 군수품을  많이도 버려야만 했다. 또, 중대 방석 옆 마을의 한 동굴에는 오랫동안  모아 놓은 군수품이 가득 있는데 가져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도 들려왔다.

귀국하는 장병한테는 나무로 짠 궤짝(귀국 박스라 불렀는데 크기에 따라 "A"형, "B"형, "C"형이 있었다.)을 계급별로 정해진 크기와 개수만큼 한국으로 가져갈 수 있는 특혜가 있었다. 병들은 물론 제일 작은 것 한 개였다. 철수가 아닌 귀국때는 그래도 동료들이 조금씩 걷어 바치고(우리 통신반은 1인당 5불씩), 중대에서 C-레이션을 몇 박스씩 주어 보내니 귀국 박스를 대충 채울 수 있었다.무조건 양국에서 한개씩 주는 월남참전 기장
우리는 월남고참들이 귀국할 때마다 귀국선물을 바쳐 왔지만, 막상 우리가 개별 귀국이 아닌 전원 철수를 하게 되니 우리에게는 선물을 해줄 월남쫄병이 없었다. 겨우 중대에서 C-레이션 한박스씩이 전부였다. 그래서 우리는 서울로 갈 몇 명이 귀국박스 한 개를 사용하기로 했다.
내가 넣을 것이라고는 여단 PX에서 구입한 헤드폰 한 개 (홍수때 피난왔던 대대 하사한테 빌려주었다가 날린 앰프를 살 때 같이 산 것)와 중대에서 준 C-레이션 한 박스뿐이었다....
지금까지 해 오던 절반 병력의 출동이 아닌 중대 전 병력의 헬기 탑승계획이 세워졌다.  철수 시 적의 기습에도 대비해야 했다.

철수 전야, 모두들 들떠 있었다. 각자 개인관물을 챙겨 곤봉에 담았다. 태진이 생각이 많이 났다....
드디어 12월 04일 날이 밝았다. 우려했던 밤도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이제 조금 있으면 월남군이 방석을 인수하러 올 것이고 우리를 데려갈 헬기들이 올 것이었다. 아침 식사 후 중대 외각 경계만 남기고 모든 병력이 헬기장에 집결했다.
일년전 월남 신병 때 작전지역으로 출동하기 위해 헬기를 기다리던 생각이 났다. 그때는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했던가....
작전에 나설 때 마다 매번 이번에는 별일 없을까, 방석으로 돌아 올 수 있을까 했었는데... 이번에는 돌아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방석을 인수할 월남군 병력은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때 몇 달 전에 우리를 도와 작전 때 동행하다 부비트랩에 한쪽 발을 잃은 월남인 이 목발을 짚고 나타났다. 아마 6중대의 철수를 맞아 안 만큼 감회가 깊은 사람 흔치 않을 것이었다.... 중대장과 작전하사에 이어 나도 안과 작별의 악수를 했다.

최근(2000년12월)에 월남에 그것도 청룡 6중대가 있던 짜큐마을에 다녀 온 해병223기 신재화 수병의 제보에 의하면 옛날에 물을 길어 먹던 우물이 지금도 그대로 있고 중대 방석도 흔적이 그대로 있는데, '안'은 위장병으로 10여년전에 죽었고, 그의 아내가 아주 어렵게 살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이다....

저 멀리... 동쪽 마리아 성당 너머로 지평선에 헬기들이 떴다. 까만 점들이 점점 커졌다.  한참 후  다가온 건쉽 두 대가 중대 주위를 돌면서 경계를 하는 사이 헬기들이 차례로 내려 앉아 중대 병력을 태워 위로 올랐다. 나도 헬기에 올랐다. 헬기가 공중으로 솟았다.
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다시는 볼 수 없을 6중대 방석이 저 아래로 멀어져 간다. 지금까지 몇 번인지 모를 만큼 6중대 방석을 뜨고 내렸건만 오늘만큼은 왜 이렇게 느낌이 다를까?
공중에 올라와서 보니 저 아래 중대 북쪽으로부터 수십명의 사람들이 논밭을 가로질러 중대 방석을 향해 뛰어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일까?  저들은 누구일까?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어디선가 기관총 사격소리가 들렸다. 건쉽인지 아니면 경계병력에서 경고사격을 하는 것이리라....
마지막까지 중대 외각 경계를 하던 병력이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전원 헬기장으로 집결하여 마지막 헬기에 올랐다.
마지막 헬기가 떠오르자 모든 헬기가 청룡여단으로 향했다.
나는 다시는 못 볼 월남의 산하를 열심히 내려다보았다. 저 멀리 6중대 방석이, 그 북쪽으로는 5중대 방석이 그리고 바로 아래로는 대대방석이 멀어져 간다.... 우리가 떠나면 이 지역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오래 가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살아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서운하고, 눈물이 나올똥 말똥 하는건 또 무슨 주책인가?? 이것도 이별, 작별인가? 좌우간 머리 속이 복잡했다....월남에 올 때 같이 머리 속에서 무언가가 막 뛰어 다니는 것 같이 혼란스러웠다.....
지휘관들은 긴장을 늦추지 말 것을 계속해서 주지 시켰다. 여단에서 다낭항구까지는 육로로 차량이동인데 그 도중에 적의 기습이 우려된다는 것이었다.귀국선~! 어쨌든 귀국선 뱃속에 들어가야 진짜 사는 거라고들 하였다.
여단에서 차량으로 다낭항구까지 이동 도중 곳곳에서 아군의 경계병력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일년 전에 월남에 왔을 때도 저런 모습을 본적이 있었다. 대대 병력의 이동이라 차량행렬이 길어 잘 알 수는 없었지만 들리는 말에 의하면 맨 뒤의 후미는 적의 사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다. 아무리 철수 중이었지만 우리는 적들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대대병력이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다낭항 부두에 도착했다. 그러나 내가 작년 월남에 올 때와 같은 배에서 막 내린 얼굴이 하얀 월남 신병은 없었다.
우리는 드디어 배에 올랐다. 배의 옆구리에 있는 문을 들어서면서 나는 속으로
살았다~! 하고 외쳤다.맨위 목차로 가기  
 

귀국선--부산항....

귀국선 1971.12.09 부산앞 바다

1971.12.09 부산항 제3부두

배가 다낭항을 출발하고 몇 시간 후부터 다시 멀미에 시달려야 했다. 이번 멀미는 작년 월남에 올 때 보다도 더 심했다.  일년이 넘는 월남 생활에 심신이 많이 망가졌나보다....
그래도 우리는 좋았다. 마냥 행복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들 그랬으리라...  그런 와중에서도
태진이의 생각은 늘 머리 속 한편에 남아 있었다.
지금 태진이와 같이 가는 거라면....

며칠 후 갑자기 바깥 공기가 바뀌었다. 이번에는 살을 에이는 찬 바람이었다. 아~! 지금이 12월,
한국에서는 지금 추운 겨울인 것을 잊고 있었다.
너무 추워 갑판에 나가 있을 수가 없었다.

1971년 12월 09일 드디어 배가 부산항에 들어섰다. 높은 갑판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부산항 제 3부두는 어마어마한 인파로 가득했고 한편에는 환영행사장으로 보이는 곳이 요란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한국의 인기 연예인들은 다 동원되었다는 말이 들려왔다.
주월한국군중 처음으로 철수해 오는 부대이니 당연했다. 앞으로 계속해서 철수해 오는 부대들은 이런 대대적인 환영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뒤늦게 월남에 갈 때 그러했듯이...
 

1971.12.09 부산항 제3부두

1971.12.09 부산항 제3부두

1971.12.09 부산항 제3부두

1971.12.09 부산항 제3부두

1971.12.09 부산항 제3부두

개선 장병의 목에 꽃을 걸어 주는 인기 여배우 윤정희 -- 누굴까??

행사장에 참석할 병력이 내려가고 우리는 배에 남아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배의 바로 아래 부둣가에 수많은 가족들이 나와 각종 피켓에 이름을 써서 들고 다녔고 또, 풍선에 이름을 써서 긴 실에 매어 갑판까지 올려 보내기도 하였다.
나는 선실로 내려가 잠시 후 내릴 준비와 월남서부터 갖고 온 PRC-25 무전기를 챙기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급히 뛰어 들어와,
야! 신완식, 네 이름이 씌여진 풍선이 올라왔어! 했다. 갑판으로 달려 올라갔다. 그러나 이런~! 장내 정리 헌병들이 사람들을 배에서 멀리 밀어내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그때 어떤 동기 하나가 내 이름이 씌여진 풍선이 있어 내려다보았는데 부모님 같더라, 그래서 너 이배에 있다고 악을 쓰고 손짓으로 알려 드렸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중에 들은 부모님 말씀이 그때 군인들이 밀어 내면서 모두 포항으로 갈 거니까 면회를 하려면 포항으로 가라고 했는데 아버지께서 편찮으셔서 그냥 서울로 돌아 오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풍선을 띄웠을 때 갑판위에서 누군가가 내가 배에 있다고 손짓으로 알려 주어서 일단 안심하셨다고 하셨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모든 병력이 배에서 내려 부두에 집결했다. 지시 받은대로 무척이나 정들었던 무전기를 나를 찾아 온 보안요원에게 넘겨주었다. 그 무전기는 그 당시 미군이 사용하고 있는 최신형 무전기여서 특별 취급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6.25 때 쓰던 낡은 미제 무전기인 PRC-8, -9, -10 을 사용하고 있었다. 맨위 목차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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