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도착....

다낭항....

드디어 배는 다낭항 부두에 대고 있었다. 다낭항은 우리나라로 치면 강릉과 같은 위치에 있는 항구다. 부산항과는 모습이 전혀 달랐다. 높은 건물은 없고 황량한 모래벌판에 엉성한 판자집 촌마을 같은 풍경... 말로만 듣고, 사진에서나 보던 야자수와 바나나 나무 같은 것들이 많이 보였다. 정말 낯선 풍경이었다. 우리는 배에서 내려 집결했다. 오래 동안 배에서 있다 내려서 그런지 모래바닥이 마치 바닷물같이 울렁울렁 움직였으나 곧 괜찮아졌다.귀국하는 해병... 다낭항은 미군 관할이고 그곳에서 남쪽으로 수십Km 떨어진 호이안 이라는 곳에 청룡여단 본부가 있다고 했다. 여단에서 우리를 데려갈 차량이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저 멀리에서 일단의 차량행렬이 전조등을 켜고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나더니 곧 우리 앞에 와서 멎었다. 그러자 그 차량들에서 수백 명의 얼룩무늬 해병들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아, 바로 월남 근무를 무사히 마치고 귀국하는 해병들이었다. 바로 우리가 타고 온 배로 귀국하는 것이었다. 모두들 아주 새까맣게 그슬려 있었고 눈들이 빤짝빤짝했다. 사람들 말이 전투를 치르면 눈에 살기가 돈다고 했는데 저것이 바로 그 살기인가?? 좌우간 나같이 신병한테는 무척 무섭게 느껴졌다. 귀국하는 해병들은 모두 곤봉(더블백)을 하나씩 들고 즐거운 표정으로 배를 향해 가며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 주었으나 그 기세에 기가 죽은 우리는 부럽고 겁먹은 모습으로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일년 후 나도 저렇게 살아 돌아 갈 수 있을까? 맨위 목차로 가기

청룡부대 마크 청룡여단....
귀국부대가 배 쪽으로 떠난 후 우리는 귀국부대가 타고 온 차에 올라 여단으로 향했다.  여단으로 가는 도중 도로 옆 숲 곳곳에서 우리를 경호하고 있는 병력들이 보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으나 우리들은 그저 겁먹은 신참들일 뿐이었다. 한참을 달려서야 여단에 도착했다. 온통 모래밭이 아니면 숲이었다. 여기저기 모래주머니(사낭)를 쌓아 구축한 벙커들과 초소, 진지, 철조망들이 보이고  하늘에는 여러 헬리콥터들이 엔진소리도 요란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전쟁터라는 기분이 들기에 충분했다.
여기서 일주일간 실전 훈련을 받은 다음 부대로 배치된다고 했다. 그날 저녁 무렵부터 달라붙는 그 유명한 월남모기는 정말 굉장했다. 처음엔 하루살이들이 무더기로 날아다니는 줄 알았는데 그게 바로 그 유명한 월남모기였다. 온몸 여기저기가 따가와서 무심결에 손으로 이리 저리 긁고 문대고 했는데 손바닥이 끈적거려 보았더니 이런~! 손바닥에 시뻘겋게 피가 묻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숫자도 숫자지만 군복을 뚫고 마구 쏘는데 정말 정신이 없었다. 모기약을 지급받기까지 무수히 물렸다. 모기약은 스프레이와 한국에서는 못 보던 바르는 것도 지급받았다. 다음날부터 실전 훈련에 들어갔다. 한국에서는 물자를 아끼느라 조교의 시범만 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여기서는 부자나라 미국이 군수물자를 무한정 대 주기 때문에 아낄 것이 없었다. 무엇이든지 실제 실습으로 이루어 졌다. 수류탄, 클레모어, 지뢰, 조명지뢰, 60mm로켓, 핸드패러슛등 모두 실제로 장치하고 쏘아 보고 터뜨려 보았다.

월남의 생활 처음부터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야간 불침번이었다. 한국에서는 매일 밤 한 시간이 넘는 불침번은 없었는데 월남에서는 온 밤을 항상 3교대로 서는 것이었다. 해가 질 때부터 밤 12시까지, 그 다음은 3시까지, 또 그 다음은 밝을 때 까지... 정말 졸음을 참기가 힘들었는데...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맨위 목차로 가기

맞아 죽을뻔....

월남에 온 지 사흘째 쯤, 불침번을 해질 무렵부터 밤12시까지 서는 날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졸음과 싸우며 옆 초소의 전달을 힘들게 외치고 있었다. "열하나 독점땡땡~! 정신통일~!".... "열하나 독점셋공~! 근무철저~!".... 밤 11시30분을 알리는 전달 고함소리는 전달한 것 같은데..... 그다음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고 화들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조금 전까지 분명히 내가 가지고 있었던 카빈소총이 없어진 것이었다???
사낭 위에는 실탄이 꽉 차있는 탄창만 덩그라니 고요한 달빛에 빛나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총은 순찰하던 당직하사가 내가 조는 것을 보고 가져간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정말 겨우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 당직하사와 사고자(군 형무소에서 복역 중 자원하여 온 고참 사고병) 둘이서 날 패면서 하는 말, "군법에 전장에서 개인화기 분실은 사형이지만 죽이진 않을 테니 찍소리 말고 맞아라~!" 하는 것이였다. 그날 맞다가 두 번 뻗었다.
이것이 나에겐 엄청난 충격이 되어 그 뒤로 제대할 때까지 한번도 근무 중 졸아 본 적이 없다.
이리저리 들리는 말이 2대대가 제일 위험한 곳이라 전해졌다. 그 이유는 2대대가 산악지대가 시작하는 초입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드디어 훈련 마지막 날 부대배치가 발표되었다. 9365xxx 신완식, 2대대~!
나는 2대대였다. 그러면 그렇지... 돈, 빽없는 내가 무슨 수로.... 통신병으로는 나 말고 225기 박삼례 수병이 함께 2대대로 가게 되었다.
2대대까지는 헬리콥터로 가야 했다. 거리도 멀지만 위험해서 차량으로는 갈 수가 없는 곳이었다.

2대대로 배치되는 여러 명이 헬리콥터에 올랐다. 생전 처음 타 보는 헬리콥터가 신기하기도 했지만 한편 진짜 전쟁터구나 하는 생각에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다. 헬기의 엔진소리는 너무 커서 옆 사람과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그날 생전 처음으로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숲, 논밭, 모래 벌판 상공을 한참을 날아 2대대 상공에 도착했다. 하늘에서 본 대대방석은 마치 거대한 피자 같은 모습이었다.

하늘에서 본 5중대 방석, 평지에 위치한 벙석은 모두 이렇게 생겼다.

 

2대대 5중대  방석, 평지에 위치한 방석 은 모두 이렇게 커다란 피자같이 생겼다.

 


2대대로....

대대방석에 내려보니 여기도 온천지가 사낭더미였다. 벙커도 초소도 교통호도 모두 사낭을 쌓아 만들어져 있었다.
대대 통신반에 가서 신고를 했다.  2대대에는 나보다도 먼저 와있는 226기 동기가 있었다. 김태진이었다. 내가 국군의 날 행사를 치르는 사이 바로 월남으로 온 것이었다. 2대대 주변에는 5, 6, 7중대와 CAP소대가 있는데 그중 6중대는 청룡부대 중에서는 유일하게 고지에 위치해 있다고 했다. 그것도 산악지대 초입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제일 위험하다고들 했다.
그런데 그 6중대로 나보고 가란다. 각오는 했지만 계속해서 악조건, 오지로만 떨어지는 것에 약간의 분노도 느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6중대는 나하고 225기 박삼례 수병 둘이 결정되었다.... 멀리서 포성이 들려왔다. 아~! 여기가 진짜 전쟁터구나.... 싶었다.
그날로 다시 헬기로 6중대로 날아갔다. 하늘에서 본 6중대는 피자같이 생긴 다른 부대와는 달리 과연 소문대로 조그만 산위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뒤로는 점점 높은 산들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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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중대로....

이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지도를 클릭하면 더 자세한 지도를 볼 수 있습니다. 다낭, 호이안 및 6중대가 있던 곳의 당시
지도 -- 부라보탱고(BT) 032, 510 지점에
6중대가 있었다.

<위 지도를 클릭하면 더 자세한 지도를 볼 수 있습니다.>

6중대 OP에서 중대본부와 1소대 쪽으로 본 모습, 왼쪽에 중대본부 상황실과 하얀 스트롱 지붕, 그 왼쪽이 중대장 벙커이고 그 왼쪽 높은 탑 같은 것이 해포관측OP.... 저 멀리 흰 기둥 두개가 정문이고, 사진 오른쪽 하단에는 월남 RF의 105mm 곡사포 진지가 보인다.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데 105mm 진지 우측으로 쑥 들어가면 통신제1벙커가 있었다.
(위 사진은 지금은 외국에 살고 계시는 대선배 장교님께서(익명요구) 1968년도 6중대에 근무 중 찍었다는 6중대 방석 사진이다.
내가 있던 때와는 조금 다르지만 전체 골격은 그대로다.) 
<위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최근(2002년 10월) 인터넷을 뒤져 내가 월남생활을 했던 지역의 제법 자세한 지도를 발견했다.(위 오른쪽 지도) 얼마나 반가운지....
내 기억과 6중대에서 근무했었던 여러 선, 후임 및 동기들의 조언을 근거로 하여 위와 같이 6중대 방석의 위치를 지도상에 표시할 수 있었다.

6중대에 착륙하여 줄줄이 신고를 마쳤다. 드디어 월남에서의 진짜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죽으나 사나 여기가 앞으로 일년 동안 내가 지내야 할 곳이었다.
여기도 역시 모든 시설물이 사낭으로 뒤덮여 있고 벙커들은 모두 반쯤 땅속에 묻혀 있었다.
그러나 6중대는 지금까지 내가 보아 왔던 평지에 위치한 방석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낮기는 하나 그래도 해발 45미터인 고지였다.

6중대에서 북쪽으로 저~아래에는 고노이섬에 위치한 5중대가 강 건너 멀리 보인다. 대대가 있는 동쪽으로는 자큐마을 넘어 월남에서 둘째가는 성당이라는 마리아 성당(자큐성당이라고도 불렀음)이 가까이 보였다. 중대 전체는 동서로 길 게 뻗어 있는데 중앙의 고지 정상에 콘크리트와 벽돌로 견고하게 지어진 OP가 있고 서쪽 산악지역 쪽으로는 2소대가 길게 뻗어있었다. 2소대 최전방초소아래에는 사이공에서 하노이로 가는 철로가 남북으로 비스듬히 뻗어 있고 그 철길 건너 바로 128고지를 시작으로 서쪽으로 점점 더 험준한 산악지대가 뻗어 있었다. 고참들 말이 이 철길의 레일이 군데군데 끊겨 있는데 그것은 VC들이 견고한 땅굴이나 진지를 구축하느라 산으로 운반해간 것이라고 했다. OP 에서 북서쪽 아래쪽에는 3소대와 밥을 짓는 주계가 있었고, OP로부터 동쪽으로 중대본부, 더 동쪽으로는 헬기장, 정문 위병소를 포함한 1소대, 남동쪽에는 81mm 박격포반, 남쪽에는 60mm 박격포반이 있었고 60mm 박격포반 앞 절벽 아래에는 통신제1벙커가 있었다. 또 OP뒤 서쪽에는 무서운 화력의 직사포106mm 무반동총반이 있었다.

그 당시 6중대 방석의 배치도, 이 그림을 클릭하면 더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왼쪽의 그림은 내가 있는 모든 기억을 동원해 그려 본 6중대 방석 안의 배치도이다.
서쪽 2소대 끝 아래 골짜기에 사이공에서 하노이까지 이르는 1번 철로가 있었다.

<이 그림을 클릭하면 더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6중대 통신반은 반장인 하사 한명(내가 처음 갔을 때의 통신반장은 성이 함씨로 기억됨)과 병 7~8명으로 편성되어 있었고 기거하는 벙커는 두 개였는데 남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고 각각 그 벙커 옆에는 월남 RF의 105mm 곡사포 진지가 각각 하나씩 자리 잡고 있었다.
중대 통신반에서 우리는 최신형무전기 PRC-25 로 통신하는 것을 배웠다. 약 일주일 교육 후 소대로 배치된다고 했다. 사실 나는 유선통신병 이었기 때문에 무전기는 다루어 본 적이 전혀 없었지만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없었다. 같이 배치 받은 225기 박삼례 수병과 밤낮없이 무전기를 들고 다니며 열심히 연습했다.

천자봉, 천자봉 백두산!  천자봉 백두산!
하나 둘 삼 넷 오 엿 칠 팔 아홉 공,  공 아홉 팔 칠 여섯 오 넷 삼 둘 하나 제로....
또록또록.... 부라보탱고.... 바가지오빠, 지도이순신.... 오스카 부라보.... 히힛~!
  연습 또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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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 맞은 신 수병....  

해병대 쫄병에 월남 신병이라 어디 기댈 곳도 없는 나는 6중대에 배치받자마자 식사당번, 청소당번, 물당번을 도맡아 해야 했다. 하루는 많이 모아둔 쓰레기를 태워 버리라는 고참의 지시로 쓰레기를 태우게 되었다. 고참이 쓰레기를 태울 때는 뭐가 터질지 모르니 멀리 물러서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특별히 신경 쓰지 않고 꼬챙이로 들쑤석거리며 열심히 태우고 있는데 순간 딱! 하는 작은 폭발음과 함께 순간적으로 가는 섬광이 튀어나오더니 내 옆구리를 치고 비탈위로 반사되어 갔다. 숨이 콱! 막혔다. 꼭 망치로 힘껏 내려 친 것같이 아팠다. 옆구리를 움켜쥐고 절절매고 있는데 비탈에서 뭔가가 돌돌돌~ 굴러 내리는 것이 보였다. 아픈 중에서도 눈길이 그리로 갔다. 굵고 뭉툭한 것이 총알 같았다. 주워 보니 따끈했다. 순간** 아! 이게 나를 치고 간 총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온몸이 굳어졌다. 겁이 덜컥 났다. 아픈 옆구리를 살펴보았지만 조금 벌겋고 아프기만 할 뿐 괜찮은 것 같았다.
고참한테 사실대로 말하니 큰일 날 뻔 했다며 내가 주운 것은 45구경 권총 실탄의 탄두라 했다. 아찔했다. 누군가가 던져버린 실탄이 불속에서 터진 것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작전 출발 전 탄약을 챙길 때 기분에 따라 지저분하거나 기분 나쁜 실탄을 탄창에서 빼서 철조망 쪽으로 휙 던져 버리고 새 실탄으로 바꿔 넣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뭉툭하고 둔한 권총 실탄이었게 망정이지 만일 M16 이나 LMG 또는 CAL50 실탄이었다면 나는 월남 도착 열흘 만에..~@.@~ 될 뻔 한 일이었다.. 휴~..  그때 내가 맞은 탄두를 고이 간직했었는데 언젠가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정말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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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소대 통신병으로.... 첫 매복....

3소대에서 바라본 6중대 OP 약 일주일 후 이제는 쓸 만 하다며 나를 3소대로 배치했다.
드디어 본격적인 월남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중대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포성과 총성이 들려왔다. 특히 밤에는 더 심했다. 우리의 60mm, 81mm 박격포는 물론 월남RF의 105mm곡사포도 수시로 쏘아 댔다.
6중대는 옛날 프랑스가 월남을 지배하고 있을 때 프랑스군이 사용하던 요새였다. 고지정상의 OP는 시멘트와 벽돌로 매우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었다.

6중대 방석에는 물이 나오는 곳이 없어 하루에 두번 중대 동쪽 아래 자큐마을에 있는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차에 퍼 담아 와서 중대에 공급했다. 그런데 그 물을 그냥 내려가서 길어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1개 분대가 물차에 따라붙어 사주경계를 해 주어야 했다. 물차를 경계하는 분대는 전 중대에서 돌아가면서 차출된다. 물차 경계에 차출될 때는 짜큐마을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담배피우는 아이, 그것도 7~8세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런 꼬마들이 담배를 달라고 졸졸 쫒아 다니며
씨가렛 쓰브니어 를 외친다. 언젠가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제법 큰 아이한테 겨울에 내리는 눈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책에서 그림으로만 보았다고 했다. 이 마을에선 기름을 짜는데 헝겊주머니에 깨를 볶아 넣고는 나무로 만든 틀에 넣고 역시 나무 해머로 내리쳐서 짜고 있었다. 우리나라보다는 많이 뒤떨어진 셈이다.
나이 많은 여자들은 항상 뭔가를 질겅질겅 씹고 다니다가 가끔씩 꼭 피같이 새빨간 것을 퉤~! 하고 뱉는데 아주 지저분하게 느껴졌다. 웃거나 말을 하느라 입을 벌리면 마치 금방 쥐를 잡아먹은 고양이 같이 피를 물고 있는 것 같아 아주 흉하다. 그런데 그것이 옛날 프랑스의 식민지 시절에 여자들을 겁탈하려는 프랑스 군인들을 피해보기 위해 피 같은 빨간 물을 만드는 열매를 씹었던데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여인네들도 625동란때 여자를 무지 밝히는 미군들의 겁탈을 피하기 위해 세수도 안하고 머리도 감지 않고 심지어는 더러운 시궁창물까지 몸에 발랐다는 얘기를 어른들로부터 들었었다. 월남 여인들도 같은 처지였으리라....
물차
중대에서는 매일 아침에 도로정찰을 실시한다. 이것은 대대방향으로 지정된 지점까지 수 Km의 도로를 따라 정찰을 실시하는데 가설된 유선의 훼손여부 및 도로에 지뢰매설 탐색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이 도로정찰대 역시 전 중대에서 돌아가며 차출하여 이루어지는데 도로정찰 중 가끔 죽은 시체가 길에 버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밤사이에 죽음을 당했으리라....

도로정찰이나 물차 당번을 나갈 때는 적의 기습은 물론이고 경계해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물소들이다. 월남인들이 가축으로 길러 농사일에도 쓰고 하는 소는 우리가 물소라고 불렀는데 우리나라 소하고는 색갈과 뿔의 모양이 많이 달랐다. 그런데 이 물소들이 이상하게 우리들의 얼룩무늬 위장복을 보면 가끔 덤벼들 때가 있다. 그렇다고 투우같이 거칠게 덤벼드는 건 아니고 그냥 빠른 걸음 정도로 우리한테 다가온다. 그때 피하지 못하면 크게 다친다. 나는 물차 당번때 우물가에서 여러 번 당했다. 처음 당한 것은 우물가에서 철조망에 등을 대고 경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야! 신완식~! 뒤에 물소가 온다~!하는 동료의 고함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이런! 철조망 너머에서 물소 한마리가 씩씩거리며 내게로 달려드는게 아닌가! 나는 황급히 철조망에서 물러섰고 물소는 철조망을 들이 받았다. 다행이도 철조망때문에 물소가 더 이상 오지 못하고 되돌아 갔지만 큰일 날 뻔 한 일이었다. 휴~

중대에서는 매일 저녁 중대방석으로부터 수백미터 떨어진 지점 여러 곳에 매복조를 내보낸다. 각 소대에서는 매일 저녁 1개 매복조를 차출하여 중대본부로 보낸다. 이 역시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나가기 때문에 며칠에 한번씩 차례가 돌아온다.
오늘은 내가 생전 처음으로 매복근무를 나가는 날이다. 매복 한 지점에 여섯 명씩 나간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각 소대 매복조들이 중대본부 앞에 집결하여 주의사항 및 무장검사를 받는다. 개인화기 M16 및 실탄, 실탄은 20발짜리 탄창 7개(실제 20발 자리 탄창에는 20발을 다 넣으면 스프링의 탄성이 약해져서 마지막 실탄이 잘 안 들어 간다고 하여 18~19발을 넣었다)와 탄창에 넣지 않은 예비실탄 140발 도합 280발 정도, 수류탄, 핸드파라슛, 조명탄, 클레모어, 야전삽, 모포, 물 등을 챙긴다. 판쵸우의도 빼놓을 수 없다. 중대통신반에서는 매복조들이 메고 나갈 PRC-25 무전기를 챙겨 준다.  달밤에 얼굴이 번쩍이지 않도록 고무를 태워 그 검댕이로 시꺼멓게 바르고 M16의 총열도 끄으름으로 광을 죽인다.
"담배 가지고 나가는 사람 없나~?" 작전하사의 의례적인 질문에 모두들 "네~!" 한다...?? 모든 점검이 끝나고 각 매복 조장이 매복지점의 부라보탱고(BT: 좌표)를 받고는 지도를 펴들고 숙지한다. 조장은 2명씩 조를 편성해 주고 특히 월남 신병으로 처음 매복에 나서는 나에게 각별히 주의를 당부한다.
드디어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매복조들이 중대 각 방향의 철조망을 열고 나선다. 무전기 볼륨은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바짝 줄여 놓는다.

사전에 매복에 대해서 교육도 많이 받았다. 무전기로 통신은 어떻게 하는지.. 절대로 말을 하면 안된다.. 코를 골아서도 안된다.. 총기를 철커덕거리는 소리는 밤에는 2Km 밖에서도 들을 수 있다, 담배를 피우면 안된다, 냄새 때문에 위치가 발각된다.. 모기약도 마찬가지다.. 호는 깊이 팔수록 안전하다.. 그래야 클레모어가 터질 때 후폭풍에 안전하다.. 졸다가는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른다.. 또 적이 몰래 다가와서 클레모어를 180도 돌려놓고는 앞에서 접근하는 척 한다.. 이때 격발 스위치를 눌렀다가는 클레모아가 우리 쪽으로 발사된다.... 등등..

고지에서 내려와 맨 앞의 첨병, 그 뒤에 조장이 서고 그 뒤에 무전기를 맨 내가 섰다. 나머지 셋이 내 뒤에 위치하여 일렬로 매복지점으로 향한다. 적에게 매복지점을 알 게 해서는 큰일이므로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전후좌우를 살피며 매복지점으로 이동한다. 언제라도 즉각 사격할 수 있도록 실탄은 이미 약실에 들어가 있다. 철조망을 벗어나서 중대 외곽으로 약 200m 쯤 이동했을까, 조장의 수신호에 따라 모두 멈춘다. 매복지점으로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진짜 매복지점 근처에서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기를 기다린 다음 매복지점으로 이동한다. 적에게 매복 지점을 감추기 위해서다. 매복지점에 도착하면 3명은 주변 경계를 하고 3명이 세 곳에 호를 판다. 360도의 1/3인 120도씩 맡게 될 호를 파는 것이다. 매복중에서 이 호를 파는 일이 가장 힘든 작업이다. 재수없는 때는 땅이 단단하여 야전삽으로 잘 파지지 않는다고 한다. 호를 둘이 들어가 쭈구릴 만치 파고, 앞에는 실탄, 수류탄, 조명탄, 신호탄, 클레모어 격발 스위치 등을 가지런히 놓을 수 있도록 단을 만들고 뒤쪽에는 의자처럼 앉을 수 있도록 단을 만들고 그 의자에 판쵸를 깐다. 10m 쯤 앞에 클레모어 방향, 각도 잘 맞추어 2개를 설치하고 전기줄을 끌어와 격발스위치에 연결한다. 이러면 모든 준비 끝이다. 이제부터 죽으나 사나 둘이 교대로 아침까지 전방주시를 해야 한다. 말을 해도 안 되고, 헛기침도 하면 안 된다. 나의 첫 매복,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두렵다. 같은 조의 고참이 속삭인다. "야, 잘봐둬~!"하더니 판쵸를 뒤집어쓴다. 무슨 부시럭 소리가 나더니 고참이 판쵸 밖으로 나온다. 담배연기 냄새와 함께... 판쵸를 뒤집어쓰고 담배불을 붙인 것이다. 일단 불을 붙인 다음에는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낀 채로 불 붙은 쪽을 M16의 손잡이 속으로 넣은 채로 덮으면 감쪽같다. 매복시 담배를 피우는 요령을 그때 배웠다. 지금은 담배를 끊은지 오래 되었지만 그때는 왕성한 골초였던 나는 고참한테서 배운 대로 열심히 피웠다. 그러나 담배 냄새는 어쩔 수 없이 근처로 퍼져 나갔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면 미친 짓이 아닐 수 없다.
이때 매복조마다 돌아가며 책크하던 중대본부 상황실에서 우리를 찾는다. 왕고참 208기 백운식 수병의 목소리다. 괜히 반갑다.

"천자봉  백두산, 천자봉 백두산,  이상없으면 한번 불어! 칙!""훅~ 칙!"
"또록또록, 계속 서울우편하도록~ 현재시각 열독점 땡땡, 열독점 땡땡, 잘 알았으면 두번~! 칙!""훅,훅~ 칙!" 내가 통신병 아닌가? 교육받은 대로 귀신같이 해 치운다^^. 이 "칙!" 소리(Squelch Noise)를 모르면 무전기 안 잡아 본 사람이다^^.

노련한 고참들은 이렇게 매복조들이 졸지 않도록 수시로 시간도 가르쳐 주면서 챙겨 준다.

다시 적막이 흐른다. 고요한 밤... 고참이 밤 한시까지, 내가 한시부터 밝을 때까지 근무다. 고참은 눈을 붙이라 하지만 도통 잠이 오질 않는다. 중대방석에서는 수시로 LMG 와 CAL50, 60mm, 81mm 들의 요란사격이 정적을 가른다. 60mm, 81mm의 조명탄이 가끔 올려진다. 조명탄이 터질 때마다 항상 하늘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조명탄이 터지면서 쇳덩어리 캡슐이 튕겨져 나와 바로 밑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박한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는 아군의 바로 머리위에는 조명탄을 터뜨리지 않는다.
판쵸 위에 모포를 깔고 그 속에 들어가 다시 판쵸의 절반으로 덮고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은 오지 않고 쓸데없는 공상만 머리 속을 뛰어 다닌다. 누워서 보는 조명탄이 사라진 하늘에는 달은 보이지 않고 별들만 반짝반짝하는데....떠오르는 어머니 모습, 아버지 모습...
그러던 중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소리,"공하나독점땡땡, 공하나독점땡땡..."  고참이 교대를 하자고 한다. 벌써 한시가 되었나...
참호에 들어가 앉아서 전방을 주시한다. 배운대로.. 좌에서 우로, 다시 우에서 좌로, 조금씩 중첩해서,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의심스러운 곳은 반복해서...

드디어 별탈없이 새벽이 오고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져 온다. 앞이 점차 잘 보이기 시작한다. 매복조장이 철수를 지시한다. 우리는 클레모어를 걷고, 늘어놓았던 각종 탄약들을 챙기고 힘들여 팠던 참호를 도로 덮어 버린다. "백두산 천자봉"하니 즉각 "천자봉 백두산"  하고 응답한다. "치마엄마리봉" 에 그냥"칙~" 한다. 방석까지는 불과 200m, 금방이다. 하지만 무척 위험한 길이다. 밤사이 매복조가 돌아가는 길목에 VC들이 부비트랩을 설치해 놓았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방석에 무사히 돌아와서야 휴~ 하고 안심한다. 매복대 모두가 중대본부 상황실 앞에 집결, 무사귀대 신고를 하고서야 각기 소속위치로 돌아간다. 휴~~

이렇게 기본 소대내 초소 근무, 불침번, 도로정찰대, 물차당번, 매복 등을 반복해 가며 전투부대의 소대생활을 익혀 나갔다.
보병들은 그 외에도 사낭 보수작업, 사계청소 등 힘든 일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작전명령이 하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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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작전-[ 1 ]-<하마트면 죽을 뻔....>-

그 당시 월남전은 정해진 전선이 없는 게릴라전이었다. 각 중대단위로 견고한 진지(방석이라 불렀음)에서 생활하다 작전명령이 떨어지면 약 절반의 병력이 방석을 떠나 작전지역으로 이동하여 그 지역의 적들을 색출, 소탕하는 것이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보름도 걸렸다. 작전이 뜸해지기 전까지 전체적으로 보면 약 반은 작전을 나갔고 반은 방석에서 보낸 것 같다.

드디어 내일이면 나의 첫 작전이 시작될 것이었다. 갑자기 전 소대가 바빠졌다. 각자 개인소총 M16을 손질하고 탄창에 실탄도 점검하고 예비실탄도 챙겨야 했다. 수통에 물도 담았다. 통신병은 무전기와 배터리, 롱안테나, 음어자재, COI, 대공포판, 스모크탄, 핸드파라슛, 수류탄까지 챙겼다. 나머지 탠트, 식량, 예비 배터리등의 운반은 보병 소대원들이 맡았다. 보병들은 그 외에도 60mm, 81mm 박격포와 106mm 무반동총의 포탄까지도 어느 정도의 기본량을 베낭위에 얹어 날라야 한다. 물자는 얼마든지 있었다. 한국에서는 제대로 만져 보지도 못하는 탄약들이 여기서는 벙커마다 넉넉히 쌓여 있었다.
그날 밤.... 영 잠이 오질 않았다. 내일 날이 밝으면 실전에 투입된다. 나는 저녁에 준비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다시 챙겼다....

작전개시일 새벽, 채 밝기도 전에 일어난 우리는 어둠 속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어제 준비해둔 군장들을 챙겨 헬기장에 집결했다.
월남에서의 작전 참가는 월남에 도착한 순으로 작전서열이 매겨지는데 여기에는 해병대 기수도 열외가 없다. 오로지 월남에 온 순서가 있을 뿐이었다.
멀리 동이 트고 있었다. 모두들 침묵을 지킬 뿐 말이 별로 없다. 지평선 저 멀리에 조그만 점들이 나타나더니 점점 커졌다. 우리를 작전지역으로 수송할 헬기들이었다. 까만 점들로 보이던 것들이 점점 커져왔다. 작전에 소요되는 헬기는 모두 미군이 지원한다. 때문에 각 중대에는 이러한 미군과의 통신 및 협조를 담당하는 앵글리코맨이라고 불리는 미군이 2~3명 근무했는데 중대작전 규모에는 2명이 따라 나섰다.
드디어 요란한 헬기들의 굉음과 함께 중대 상공을 헬기들이 선회하기 시작했다. 그중 꽁치같이 아주 날씬한 헬기가 주위를 날렵하게 돌고 있었는데 그 헬기가 바로 건쉽(Gunship)이라는 무장헬리콥터였다. 건쉽 한대의 화력이 보병 일개 중대와 맞먹는다고 했다.
그때 제일 높이 가만히 떠있는 몸체에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헬기 두대가 있었는데 바로 사상자를 후방의 병원으로 후송하는 메드백이라고 했다. 앵글리코맨과 헬기 간에 약속된 색깔의 스모크탄이 터지자 드디어 헬기들이 순차적으로 내려 앉기 시작했다. 우리는 미리 교육받은 탑승순서대로 헬기에 올랐다. 헬기에 다가갈 때 철모를 꾹누르고 숙이지 않으면 프로펠러 바람에 모래와 작은 돌들이 날아와 견딜 수 없이 얼굴이 따갑고 아프다. 또 잘못하면 철모가 바람에 날아간다. 정해진 인원이 탑승하는 대로 헬기들은 하늘로 솟았다. 모든 헬기가 이륙하자 산악지대 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산위를 지나고 논 밭 위를 날고 또 한참을 날아 드디어 목표지점에 다다랐다. 높은 산중의 해발 약 1,000미터쯤 되는 고지였다. 작전지역에 도착, 헬기에서 내리는 장면
건쉽들이 재빠르게 주위를 돌며 경계하기 시작했고 수송헬기들이 차례로 내려 앉아 작전병력을 내려놓았다. 누가 놓쳤는지 철모가 바람에 날려 가는 것이 보였다. 뛰어 내릴 때 역시 철모는 꽉 잡아야 했다. 우선 미리 짜여진 작전계획대로 경계병력이 제일 먼저 내려 주변 사주경계에 들어가고 나머지 병력은 즉시 중대 진지 구축에 돌입했다. 작전병력과 보급품을 내려놓자마자 헬기들은 되돌아갔다. 헬기들이 사라지자 갑자기 조용해 졌다. 각 소대별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어둡기 전에 모든 중대의 진지구축이 완료되어야 했다.
안쪽에는 중대본부 및 60mm, 81mm박격포, 106mm무반동총의 진지를 구축하고 땅을 파고 텐트를 쳤고, 외곽에는 구덩이를 깊이 파서 참호를 만들었다. 더 바깥에는 무시무시한 클레모어를 설치했고 그 바깥에는 인계철선에 의한 조명지뢰를 설치했다. 참호마다 클레모어 점화 스위치는 물론 각종 탄약 - 수류탄, 신호탄, 조명탄들을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질서 있게 나열해 놓았다. 식사는 정해진 시간이 없다. 각자 알아서 정량만 해치우면 된다.
무전기에서는 쉴새없이 지시사항이 내려오는데 무슨 말인지 잘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모든 중대진지구축작업이 끝나면 방어준비가 끝나는 것이다. 내일 아침부터는 적의 탐색에 나설 것이다.
어둠이 다가 올 즈음 각 소대별로 매복조가 출동한다. 산 중턱까지 내려가 밤새 매복하며 적의 접근을 미리 감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 매복은 중대방석에서의 매복과는 차원이 다른 아주 위험한 것이다. 이곳은 적의 병력은 많지 않으나 그래도 적의 활동영역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은 아니고 나중에 다른 작전 때에 실제로 이런 매복조가 바로 수십 미터 앞에서 적의 대규모 병력이 이동하는 것을 보고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다가 돌아온 적이 있었다. 만약 그때 무리를 했거나 적에게 들켰더라면 그 매복조는 전멸했을 것이었다.

매복조가 떠나고 곧이어 어둠이 깔렸다. 내 생애 첫 작전의 첫날밤이었다.  어두워 지자 각 소대의 기관총과 60mm, 81mm 박격포의 요란사격소리가 수시로 정적을 가른다. 남쪽하늘에 남십자성이 보인다..... 월남에 처음 오면 고참들이 저 십자성의 위치를 잘 기억해 두라고 한다. 십자성이 좌우로 이동하다가 두 번째 그 자리에 오면 만 일년이 지난 것이고 귀국하게 되는 것이다......

별 탈없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매복조들도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 아침을 먹고 출동 준비를 했다. 중대 통신반에서 고참이 와서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도무지 안심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작전지역으로 부대가 이동할 때는 일반 보병들이 짐이 많아 고생이지만 일단 작전지역에 도착한 후 작전 때는 통신병이 고생이다, 보병의 휴대품이 M16소총과 수류탄, 신호탄 그리고 식량(C-레이션) 정도인데 통신병은 M16소총과 수류탄, 신호탄 그리고 식량에다 그 무거운 무전기를 온종일 메고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수류탄 숫자를 두개로 줄이기는 하지만 무전기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드디어 출발 지시가 하달되었다. 고지로부터 주위를 살피며 하산했다. 소대 맨앞의 첨병 자리는 가장 위험한 자리이면서 또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월남 신병을 세우지 않고 몇 달 정도 작전경험이 있는 중고참을 세운다. 나는 통신병이었기 때문에 첨병이 될 수가 없었지만 보병들은 월남 서열에 따라 순차적으로 돌아서 차례가 되면 첨병이 되야 한다. 첨병,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무전기에서는 쉬지 않고 뭔가 떠들어 댔다. 연습할 때와는 달리 무슨 소린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소대가 5부능선 정도 내려 갔을 때 아주 큰 바위틈을 지나게 되었는데 마치 좁은 골목처럼 몇미터 가서 우측으로 꺽어져 있는 길이었다. 맨 앞의 첨병분대가 통과하고 소대본부가 바위틈 길로 다가가는 순간 뛰어~!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앞서가던 분대원이 후다닥 뛰어 바위 뒤로 사라졌고 나머지 모두가 황급히 엎드렸다. 영문도 모르고 나도 엎드리는 순간 앞에서 쾅~! 하고 뭔가가 폭발했다. 불과 4~5미터 앞이었다.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흙가루 같은 것이 부스스 쏟아져 내렸다. 방금 말로만 듣던 부비트랩이 터진 것이었다. 적들은 우리의 이동경로를 예측하여 부비트랩을 매설해 놓은 것이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폭발음에 귀가 멍하여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얼마 후 무전기에서 3소대를 호출하기에 응답하고 들어가니 갖은 욕설과 함께 소대장을 바꾸라는 중대장의 목소리~!  나중에 알았지만 부비트랩이 터지자마자 고지위에 있던 중대본부에서 우리 3소대를 계속 호출했지만 응답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엎드리면서 송수화기는 저 멀리 튕겨져 나갔고 난 정신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월남신병의 첫 작전이라는 이유로 너그럽게 넘어갔다. 그날 저녁에 고지로 돌아 와서 들은 바에 의하면 앞서가던 첨병분대 중 후미에 섰던 분대원이 바위틈 길에 있는 돌을 건드렸는데 느낌이 이상하여 내려다보니 돌밑 구덩이에 수류탄이 보였다는 것이었다. 그 좁은 바위틈을 어찌나 놀라 급히 뛰었는지 양쪽 팔꿈치가 다 망가졌다고 했다. 참으로 연습이 아닌 아찔한 순간이었다.  작전은 일주일간 계속되었고 매일 같은 것의 반복이었다. 낮에는 여기저기 수색하고, 저녁에는 고지로 돌아와 밤을 지내고, 매복도 교대로 나가고....  이렇게 나의 첫 작전은 별 성과 없이 방석으로 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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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2 ]-<계속되는 작전, 또 작전....>-

방석에 돌아와서 한 열흘 쯤 있으니 또 작전명령이 하달되었다. 아~! 월남생활이 바로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와 마찬가지로 작전 출동을 했다. 이번에는 첫 작전 때보다도 상당히 세련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역시 헬기로 어느 고지로 이동하여 자리를 잡고 다음날부터 수색에 들어갔다. 
수색하던 중 숲 속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가 발견되었다. 담배꽁초 옆에는 금방 배설한 것 같은 대변이 발견되었다. 소대장은 즉시 88무전기(소대내의 교신에 사용되는 것으로 송수신기가 분리되어 수신기는 분대장들이 귀 쪽 철모에 꼽고 송신기는 방탄조끼 주머니에 꽂고 다녔다.)로 전 소대에 비상을 걸었다. 적이 우리의 수색을 뒤늦게 눈치를 채고 튄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큰일을 보다가 다급해 튄 것이 확실했다. 적은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이다.정글 수색.... 우리의 병력과 화기가 월등해서 공격해 오지는 못하지만, 어디선가 숨어서 우리를 살펴보고 있을 것이었다.
갑자기 소대에 긴박감이 돌고 모두들 자세를 낮추고 M16의 자물쇠를 풀고 소대장의 지시에 따라 그 주변 수색에 들어갔다. 얼마 후 울창한 수풀 나무 밑둥에서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는 동굴 입구가 발견되었다. 소대는 동굴입구에서 멀리까지 넓게 분산 배치되어 경계에 들어갔고, 동굴 속에 스모크탄을 몇 발 까넣은 후 한참을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발견된 입구에서 이삼십 미터 떨어진 엉뚱한 곳에서 연기가 새어 나왔다. 또 한곳에서도 연기가... 소대장은 연기가 나오는 두곳에 병력을 배치해 놓고 연기가 어느정도 가신 후 일개 분대를 동굴 안으로 진입시켰다. 긴장된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이상 없다는 보고를 받자 이번에는 소대장이 직접 들어가 보겠다고 했다. 통신병인 나도 당연히 소대장을 따라 붙었다. 동굴은 입구에서는 바로 밑으로 내려가다가 바로 수평으로 꺽여 나갔다. 천정이 너무 낮아 일어 선채로 걸어갈 수 없고 바짝 숙여야 했고, 폭도 아주 좁아 둘이 비켜갈 수도 없었다. 불과 몇 미터 가지 않아 빛의 반사가 안되어 손전등빛은 맥을 못추고 주위를 살피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리 우리 첨병 분대가 앞서 지나갔어도 엄청난 긴장 속에 공포가 엄습해왔다. 내 발자국소리에 내가 흠칫 놀라고, 철모가 천정에 부딪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조금 더 들어가니 좀 넓어졌고 그곳에는 절강고구마(고구마를 얇게 썰어서 말린 것)가 담겨있는 자루가 몇 개 발견되었다. 적들의 은거지가 틀림없었다. 스모크탄의 연기와 동굴 특유의 흙냄새가 뒤섞여 숨쉬기도 괴로웠지만 동굴의 무서운 공포 분위기에 눌려 그런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속에서 적의 수류탄이 날아온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었다. 조금더 진행하니 "Y"자로 갈라졌다. 소대본부 병력은 거기서 되돌아 나왔다. 돌아 나오는 그 짧은 시간에도 적의 수류탄이 뒤에서 막 굴러 오는 것 같은 아찔한 공포, 바로 뒤에서 따다당~! 하고 당장이라도 총알이 날아올 것 같은 공포는 3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상상하기만 하면 몸이 한번 부르르~ 떨린다. 동굴을 무사히 빠져나온 뒤 얼마나 가슴을 쓸어 내렸는지... 휴~~~
소대장의 지시로 각 입구마다 수류탄을 대여섯 개씩 동시에 까 넣어 입구를 뭉개 버렸다.

다시 주변 수색을 계속하던 중, 갑자기 첨병분대 쪽에서 요란한 총성이 숲을 뒤흔들었다. 총성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첨병분대에서 측면 숲에서 수색을 피해 달아나는 적 두 명을 발견하고 일제 사격을 했으나 놓쳤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나중에 그 분대원한테 들었는데 적과의 거리는 불과 20 미터, 분대 전원이 무차별 사격을 가했지만 정글 숲속으로 숨는 바람에 놓쳤다고 했다. 좋은 기회였는데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다.등과 방탄조끼 주머니에 꽂혀 있는 흰 것이 신호탄/조명탄으로 널리 쓰던 '핸드파라슛' 이다.

이것이 나의 VC동굴 수색의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 되고 말았다. 중대통신병으로 올라갈 때까지 다시는 동굴 수색의 기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다음 언젠가 매우 큰 작전 때 대대 작전 병력이 이동 중, 월남 민간인 촌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이때 우리 중대에게 마을을 정밀 수색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즉시 각 소대 병력을 마을 외곽에 배치하고 본부중대 병력은 모든 마을 주민들을 쫒아내어 마을 앞 넓은 곳에 집결시켰다. 마치 가축을 몰 듯 했고 그들은 영문을 모른 채 겁먹은 눈빛과 표정으로 우리의 총뿌리에 이리저리 떼밀려 집결을 당했다. 대부분 노인과 어린아이들 뿐 젊은이는 거의 없었다. 모두 모으니 약 40여명, 빙 둘러 우리 병력이 실탄을 장전한 채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사이 신분증 검사가 진행되었다. 신분증이 없으면 따로 분류되었다. 잠시도 그들에게서 눈을 떼서는 안된다. 언제 무엇이 날아 올지 모른다. 그들 중에 VC, NVA가 없으란 법 없기 때문이다. 이러는 동안 다른 병력들은 가가호호 집을 수색한다. 집 자체보다도 집안에 출입구가 있는 지하 땅굴 수색이 무섭다. 정말 무섭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지만 이때, 약간은 멀리에서 매우 큰 폭발음이 울렸다. 모두가 바짝 긴장했다. 만일 이런 폭발이 민가에서 발생했다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한참 후에 확인된 이 폭발음은 우리중대가 아닌 5중대 쪽에서 당한 105mm 부비트랩이었다고 전해졌다. 얼마후 메드백 헬기가 5중대의 작전 지역쪽에 내리고 뜨는 것이 멀리 보였다. 저 부비트랩이 우리 중대에서 터졌다면.... 우리가 얼마나 광분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마을 수색은 별 탈없이 끝나고 증명서가 없는 월남인들은 곧이어 날아온 헬기로 후송되었고 우리는 다음 작전을 위하여 다음위치로 이동했다.

이렇게 거듭되는 작전을 경험하면서 서서히 월남고참이 되어가는 것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나도 드디어 소대통신병 근무를 마치고 중대통신반으로 올라갔다. 그만큼 세월이 흐른 것이겠지....

우리 6중대 바로 남동쪽 아래에 있는 마을에 사는 잘생기고 영어가 능통한 '안' 이라는 이름을 가진 월남인이 있었는데 정보원으로 활용하면서 작전 시 필요할 때는 자주 데리고 다녔다. 중대장이 영어가 능통했기 때문에 중대장과 직접 대화를 했다.

1971년 2월6일 황룡12-22 소부대작전 중, 중대 서북쪽으로 얼마 멀지 않은 VC마을이라는 지역에서 치러진 작전에는 과 중대지역 부면장(안내 첩자)이 동행했다. 이동시 작전하사가 앞장을 서고 그뒤에 안, 부면장, 중대장, 통신병(219기 윤종태), 중대장 전령, 통신병(나)의 순서로 이동하던 중, 안이 부비트랩을 밟았다. 쾅~! 하는 폭발과 함께 모두가 순간적으로 엎드렸다. 뒤이어 쏟아지는 흙, 돌가루... 이어서 들려오는 비명, 신음소리.... 안의 발목이 떨어져 나갔고 안내하던 첩자 부면장의 왼쪽눈알이 빠져 탄띠에 매달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안과 가까운 거리에 있던 중대장도 왼쪽 팔과 양쪽 허버지를 심하게 다쳤다. 바로 중대장 뒤에 있던 윤 수병과 중대장의 왼쪽 뒷쪽에 있던 나는 구사일생으로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실전중 나도 모르게 찍힌 사진 4장중의 하나]] 임종린 중대장이 왼쪽팔을 다친 채로 작전을 지휘하고 있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아비규환속에 안과 부면장은 미군 앵글리코맨의 연락으로 잠시 후 날아온 메드백 헬기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러나 중대장은 후송을 마다하고 위생병의 치료를 받으며 계속 중대를 지휘했다.

바로 왼쪽 사진에 왼쪽 팔과 다리에 붕대를 감은 사람이 바로 그때의
중대장이다.


그날 저녁 무전기의 배터리를 교환하려던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배터리 케이스와 몸체가 겹치는 부분에 파편에 맞은 흔적이 있고 그 때문에 케이스가 잘 안열리는 것을 그때야 발견한 때문이었다. 또 윤수병이 무릎에서 소량이지만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아까 낮에 안이 부비트랩을 밟을 때 작은 파편을 무릎에 맞은 것이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 내리고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그날 밤 중대장 텐트에서는 신음소리가 밤새 계속되었다. 중대장 전령에 의하면 상처가 워낙 깊어 진통제로도 잘 안된다며 그렇다고 마약인 몰핀을 쓸 수도 없어 고민이라 했다. 조금만 다쳐도 그걸 핑계로 어떻게 해서든지 후송되어 귀국하려고 애쓰는데 후송을 마다한 중대장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존경스러움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중대장은 심창섭 위생하사의 등에 업혀 다니며 중대를 지휘하였고 그날 오후 모두 무사히 중대방석으로 되돌아 왔다.


기억이 확실치 않으나 이때의 중대장이 임종린 대위가 아니었나 싶었는데 이글을 읽은 여러 선,후임들께서 바로 이 존경스러운 중대장이 먼 뒷날 제20대 해병대사령관을 역임했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역시 위대한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건 분명하다...

최근에(2003년 2월말) 이 옛중대장님과 전화통화와 이메일을 주고 받을 수가 있었는데 중대장님은 그때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계셨다. 여기에 중대장님의 이메일 중 위의 사건에 관한 부분만 그대로 옮겨본다.

1. 내가 부상당한 부위는 왼쪽팔.다리와 오른쪽 다리였으며 그당시 중대본부는 3소대 다음이였는데 작전하사.안. 부면장(안내첩자).     중대장.통신병. 순 이였으며 안은 다리 절단, 부면장은 왼쪽눈이 날라갔지요(부비추럽폭팔로).
    부상당한 안과 부면장을 헬리콥타로 후송하고 야간 방어작전에 들어 갔는데 진통제가 없어 아스피린을 한 주먹 먹고 밤을 새웠지     요.  작전이 끝날때까지 위생하사(심창섭) 등에 업혀 중대를 지휘하며 그다음날(2월7일) 중대 방석에 돌아왔지요..
    곧 바로 여단의 무중대로 가서 응급 치료를 받았지요.

    내가 중대를 떠난날: 1971.2.11 여단본부로 가서 수술을 완전히 받고 휴식후 여단장께서 귀국을 시키지 않고 여단 인사과장으로     발령해서 1년이상 근무타가 청룡부대 맨 마지막 진과 같이 다낭 부두에서 배를 타고 귀국 했지요...

2. 안이 부상 당한 날: 1971.2.6, 작전명: 황룡12-22.소부대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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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3 ]-<굶어 죽을 뻔....>-
우기철에 불어난 늪지대를 건너는 장면, 정말 위험하다....
이렇게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작전을 수도 없이 거듭했다. 어느때는 중대 작전, 어느때는 대대작전 또 어느때는 여단작전....
어떤 때는 부대 이동중이나 낮은 지역의 작전 중에 늪이나 낮은 강을 건너야 할 때가 있다. 특히 늪보다도 탁 트인 강을 건널 때는 정말 아찔하다. 완전히 우리의 모습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우선 병력 절반의 엄호 하에 절반이 건너고 나면 먼저 건넌 병력의 엄호 하에 나머지 병력이 건넌다. 어떤 때는 물이 가슴까지 찰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소총과 특히 무전기, 배터리는 물에 적실 수 없으므로 가슴에 안고 가거나 머리위로 쳐들고 가야만 한다. 무전기의 송수화기는 신품일 때는 방수가 곧잘 되지만 조금 지나면 송화스위치의 고무가 찢겨져 방수가 안된다. 이럴 때 비를 맞거나 물에 빠뜨리기라도 하면 삐~~ 하는 아주 강력한 음이 계속해서 송신되고 그 주파수망은 마비되고 만다. 이럴 때는 얼른 무전기를 끄고 송수화기를 힘껏 흔들어 털고 말리는 수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진땀을 흘리며 겨우 통신이 재개되면 정신없이 쏟아지는 XXX... ㅠ.ㅠ 통신병의 비애다. 그래서 우기철 중에는 송수화기를 비닐로 뒤집어 씌우고 고무줄로 묶어 사용한다. 매복 나갈 때도 역시 그렇게 한다.

또, 가끔은 늪지대나 강가에서 작전 중에 해병대 수색대의 보트를 만날 때가 있다. 수색대는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커다란 선풍기같이 생긴 것이 보트 후미에서 강력하게 돌고 있었다.
배 밑의 스크류 방식은 수초에 감겨 사용할 수 없어 선풍기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멋진 해병대 수색대와 보트 보기와 달리 엄청나게 빠른 속력으로 늪, 강을 누비고 다니는 모습은 참으로 근사했다....

작전 중에는 이틀에 한번씩 헬기로 각종 탄약, 식량, 식수, 우편물, 배터리 등 모든 보급품이 공급된다.   식수는 쓰고 버린155mm 곡사포의 장약통을 사용한다. 고무박킹이 있어 방수가 확실하여 함부로 취급을 해도 샐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우기철이 한창이던 어느 작전때 일이다. 작전 중에 태풍이 다가와서 보급 헬기가 뜨지 못하게 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이면 해소되겠지 하고 별로 걱정하지 않았는데 무전으로 날아오는 상부로부터의 소식은 장난이 아니었다. 현재로서는 보급재개가 언제 가능할 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과 절대적으로 식량을 아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헬기가 뜨고 내리는데 비의 양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문제는 바람이라는 것이었다.
해발 약 1,000미터의 고지에 있던 우리중대는 식량비상이 걸렸다.  주간의 적 수색도 중지하고 진지 방어만 하며 날이 좋아지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날씨는 절망적이었다. 쏟아지는 비에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었다. 중대장은 하루에 한 끼로 줄이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중대에 식량은 이미 바닥이 나 있었다. 억수같은 비 때문에 물은 걱정이 없었다. M16 탄통 바닥에 놓고 판쵸우의를 둘이 잡고 벌리면 금방 받아 졌다. 받은 빗물에 정수약 두알만 넣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식량.... 드디어 식량이 완전히 바닥났다. 모두가 어쩔 수 없이 굶기 시작했다. 이러던 중 드디어 상부로부터 작전지시가 하달되었다. 헬기는 이륙이 불가하고 차량으로 식량을 싣고 갈 테니 차량 이동이 가능한 지점까지 내려와 식량을 수령하라는 것이었다. 중대는 애써 구축한 진지를 모두 걷고 하산 길에 나섰다. 굶주림까지는 아니지만 배고픔에 악천후까지 겹쳐 정말 힘든 이동이었다. 거의 바닥까지 내려갔을 무렵, 아군 경계병력과 마주쳤다. 식량 보급부대의 경계병력이었다. C-레이션을 가득 실은 차량들이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곳까지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환호를 하며 달려가 차위에서 던져주는 C-레이션을 닥치는 대로 까먹었다. 실컷 배를 채운 우리는 식량을 지급받아 다시 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산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왠일인지 긴급 철수명령을 받고 방석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적이 빤히 살피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 다시 산위로, 그것도 걸어서 올라간다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판단을 하지 않았나 싶다.

또, 언젠가는 작전 중 고지위에서 저 멀리 산 아래 평지 논 밭 개활지에 미군 장갑차 여러 대가 일렬로 진행하는 것이 보였다. 별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맨 앞의 한대가 지뢰를 밟은 듯 거대한 폭발과 함께 연기에 휩싸이는 것이 아닌가? 잠시 후 들려오는 폭음~! 필시 대전차지뢰에 당한 것 같았다. 뒤의 장갑차에서 미군들이 쏟아져 나와 파괴된 장갑차를 살피는 듯 했다. 얼마후 메드백헬기가 건쉽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났고, 지상에서는 스모크탄이 터지고 메드벡이 내려앉았다가 곧 이륙하여 사라졌다.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후 미군들은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더니 모두들 장갑차에 올라 망가진 장갑차로부터 멀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그저 그들의 행동을 재미로 바라보고 있다가 망가진 장갑차는 어떻게 할 지 궁금했는데, 이런~! 파괴된 장갑차에서 섬광이 번쩍!~함과 동시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시커먼 연기가 산 높이만큼 치솟고 새빨~갛게 달궈진 듯한 커다란 조각들이 연기를 끌며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곧이어 천지를 진동하는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미군들은 망가진 장갑차를 적에게 넘겨주지 않기 위해 폭파시켜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는 장갑차 행렬은 다시 일렬로 어디론가 떠나갔다.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맨위 목차로 가기

두줄기 눈물....

부산 사나이 깜생 219기 윤종태 수병 중대 통신반에는 219기 부산 본토박이 윤종태 수병이 있었다. 자상하고 구수한 부산 사투리에 몰라도 아는 듯, 알아도 모르는 듯 구구절절 넘어가는 말솜씨는 일품이었는데, 해병대에 입대하기 전에 부산에서그루비원스라는 4인조 기타 밴드에서 드럼을 쳤다고 했다. 유난히 새까만 피부에 정다운 부산 사투리가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
내가 소대 근무를 마치고 중대로 올라 와서는 나와 무척 가깝게 지냈다. 나는 돌팔이지만 기타를 아주 약간 칠 줄 알았었는데, 통신제2벙커 앞에서 이태우(??), 나, 양재천(226??) 윤수병과 나는 나뭇가지를 꺾어 드럼을 치는 스틱을 만들고 드럼 대신으로는 C-레이션 박스를 이용했고, 깡통, 탄통, 105mm 포통까지 동원하여 드럼 쎄트를 만들어 그걸 두둘겼는데 윤수병의 실력은 가히 일품이었다. 윤수병은 특히 벤쳐스 악단의 와이프아웃의 중간 부분의 드럼 애들립 부분을 즐겨 두들겼다.
나는 윤수병한테 막대기로 드럼의 기초를 배우며 리듬 감각을 익혀갔다. 박자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그것이 내가 서투른 기타를 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둘이 열심히 드럼과 기타를 칠 무렵 한국으로부터 날아오는 전파속에서 들려오는 새로운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나훈아의 두줄기 눈물이었다. 윤수병의 타고난 음악 소질 덕분으로 금방 터득하여 우리는 목이 터져라 두줄기 눈물을 불렀다. 드럼을 치면서, 기타를 치면서....
나중에 이 두줄기 눈물은 노래방에서 나의 18번지중 하나가 되었다. 좀더 오래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윤수병은 1971년 07월에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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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초기지-<부상당한 소대장...>-

마리아 성당안에서 백운식(208기), 김태진(226기), 최철식(225기) 중대에서 서쪽 산악지역으로 수Km 떨어진 175고지(전초기지라고 불렀다.)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이 철수하는 바람에 우리 2대대에서 병력을 차출하여 그 고지를 지켜야 했는데 우리 6중대에서 소대장과 통신병을 포함 가장 많은 병력이 차출되었다. 소대장은 악명높은 3소대장, 통신병은 225기 최철식 수병이 가게 되었는데 최수병은 나보다 1기 선임이지만 월남에 늦게 왔기 때문에 작전배치 서열에 의하여 정해진 것이었다. 그곳은 산악지대 깊숙이 들어간 곳이라 적의 출몰이 잦은 매우 위험한 곳이었다. 중대와의 연락은 오로지 PRC-25 무전기 한 대와 예비무전기 한 대 뿐이었다.  
그러던 중 한달이나 지났을까, 전초기지의 소대장이 중상을 입어 메드백 후송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원인은 소대장 뒤쪽에서 폭발물이 터져서 후면 전체에 심한 파편상을 입었다고 했다. 자세한 원인은 알 수 없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알려왔다. 고지 안에서 당한 걸로 보아 아마도 아군이 설치해 놓은 지뢰의 인계철선을 건드린 걸로 생각된다.
포악하게 굴더니 잘됐다고들 아주 좋아했다.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니 치료후 귀국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누가 와도 그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새로운 소대장은 오지 않고 그 소대장이 다시 돌아온다는 소문이 들려 왔다.  소대원들은 경악했다.  그러나 얼마 후 그 소대장은 돌아왔고 그 후 더욱 포악한 소대장으로 온 중대에 명성을 떨쳤다.  나중에 시골 고향에 가서 박삼례 수병한테 그 대가를 치르지는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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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초기지는 몇 달후에 폐쇄되고 모두 철수하였다. 

잠꾸러기~@.@~....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잘 잔다. 한번 잠이 들면 아주 깊이 든다. 옆에서 왼 만큼 시끄러워도 개의치 않고 잘 잔다. 월남에서 내가 기거했던 통신 제2벙커는 중대내부에서 보면 반지하형이고 그 옆에는 월남 PF의 105mm 곡사포 진지 두문중의 하나가 설치되어 있다. 처음에 와서는 이 105mm 포사격 소리에 깜짝 깜짝 놀랬지만 조금 지나자 그것도 만성이 되어 버렸다.
포 한 발 쏠 때마다 그 주변이 털썩~! 한다. 그때마다 벙커 안에서는 천장에서 흑먼지가 떨어져 내린다. 포를 수십 발 쏠 때면 그 쌓인 먼지는 상당하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잘 잤다. 타고 난 체질인 것을.... 이것이 고참들 눈에는 아주 신기하게 보였나 보다.
내가 낮잠을 자다가 깨어 보면 입속에 소금, 커피, 먼지... 이런 것들이 잔뜩 들어 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자는 나를 들어 옮겨 벙커 위, 변소 옆 등등... 엉뚱한 곳에 갖다 놓아 잠에서 깨는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특히 최고 고참 208기 백운식 수병이 제일 많이 나를 골렸다.  C-레이션 소금을 까서 입속에 넣는 것 같이 골리는 방법을 생각해 내는 것도 바로 백수병이었다.
나중에 귀국하여 진해에서 근무할 때, 멀리 포항에서 동기들이 무사 귀국 인사를 해오면서 하는 말이 '
야~!  너 월남에서 어떻게 잠을 잤길래 6중대 출신들 마다 226기 하면 너 잠자는 얘기를 하냐?" 하는 거였다. 아마도 월남 6중대 출신 통신반 고참들이 귀국하여 내 잠에 대해 소문을 낸 모양이었다.

지금 나이 오십이 훨씬 넘었는데도 잠 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것을 보면 ...  그땐 ㅎ ㅎ ㅎ ...맨위 목차로 가기

멍멍탕...히힛~!... 멍멍~!

우리6중대중에서 서쪽 산악지대쪽으로 위치한 2소대와 3소대는 중대본부로부터 고지 넘어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쪽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중대본부 쪽에서는 직접 볼 수가 없다.
언젠가 중대아래 자큐마을 주민 측에서 진정이 들어왔다. 자기네 개가 우리중대 철조망 안으로 들어갔는데 우리가 총으로 쏘아 안으로 들여갔다는 것이었다.  사실인 즉, 2소대에서 철조망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개를 C-레이션 고기로 철조망 안으로 유인하여 총으로 쏴 잡아 히힛~ 포식을 했는데 자기네 개가 잡혀가는 것을 마을 주민들이 본 모양이었다. 그러나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중대장은 눈치 없이 쯧쯧쯧... 하며 적당히 끝냈다.
그 후로는  2소대와 3소대는 히힛~ 올가미를 만들어 마을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설치, 자큐마을 개들의 씨를 말렸고, 증거가 없는 마을 주민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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