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ngest Day.... -<대전투>-

1971년05월 30일로 기억된다. 우리6중대에서 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월남에서 두 번째라는 마리아 성당이 있는데 바로 이곳을 월남 티우 대통령이 방문한다고 해서 (방문 이유는 기억이 안남) 사전 경계조치로 월남군과 미군 장갑차 부대가 우리중대 근처로 이동해 왔다. 월남군의 지휘 본부는 우리 중대방석 안에 설치되었다. 중대에서도 성당행사에 참가할 행사병력 약 십여명을 차출하여 놓고 있었다. 나는 그 행사부대의 통신병으로 지정되었다. 행사병력들은 지시에 따라 모두들 위장복을 깨끗이 빨고 특별히 링도 만들었다. 링은 미제 철조망을 풀어서 잘 편 다음 M16 꼬질대에 감아 만들고, 쇠구슬은 클레모어 몸체를 분해하여 누런 베이클라이트판에 박힌 것을 떼어내어 사용한다. 이제 행사 참가 준비는 끝났다. 내일은 월남대통령 얼굴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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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일 아침 밝자마자 중대방석 81mm 박격포반 부근에 난데없는 포탄 한발이 떨어졌다. 다행히 벙커 지붕위에 떨어져서 피해는
없었지만 발사지점 확인이 되지 않았다. OP 및 2, 3소대 초소에서는 중대 동북방향 조그만 강을 건너 근거리 300, 원거리 500미터 지점에 있는 "A마을"(이름이 기억 안남) 이 발사지점같다고 중대상황실로 보고해 왔으나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일대는 월남군이 이미 일주일 전부터 완전히 장악하고 오늘을 준비해 왔는데.....
중대상황실에서 작전하사, 작전병, 통신병이 어리둥절하고 하고 있는데 두 번째 포탄이 날아왔다. 이번에도 발사지점은 "A"마을이라고 OP 와 소대초소에서 중대 상황실로 보고해 왔다.   확실했다. 이때부터 중대가 발칵 뒤집혔다. 중대장이 뛰어 나왔다.
월남군, 미군, 우리 이렇게 세 나라의 합동작전인지라 상황파악이 쉽게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서도 행사부대는 소집되었다. 깨끗이 빨아 두었던 얼룩무늬 위장복에 찰찰찰~! 경쾌한 소리를 내는 링도 찼다. 중대본부앞에 집합하여 중대장에게 행사부대 출발신고를 마치고 조금 아래에 있는 헬기장 옆을 지날 때 갑자기 요란한 총성과 함께 바로 우리 발 앞에서 총알이 파파팍~! 튀었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흩어져 주변 1소대 교통호로 뛰어 들었다. 

벌써 여러 번 느끼는 거지만 왜 이럴 때는 내가 제일 느릴까? 남들은 빨리도 뛰고 숨고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느릴까, 내가 내 스스로를 마치 슬로우비디오를 보는 것 같은 답답한 생각이 든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런 숨 가쁜 위급한 상황에서 그 짧은 시간에 뛰거나 엎드려 포복할 때 옛날 어릴 적에 겪었던 일들이 순간적으로 주마등같이 머리 속을 스쳐가는 것이다.  

6중대 1소대 외곽에서 동쪽 대대방향으로 찍은 사진, 복판에 솟은 것이 월남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마리아성당이고, 가까운 쪽이 자큐마을이다.  우측 상단 멀리 대대근처에 포가 떨어진 뒤끝 포연이 일고 있는데 무슨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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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아군 측에서도 사격하는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중대본부에 무전기로 행사부대는 어찌해야 하는지 물었으나 예정대로 행사에 참가하라는 지시였다. 한가할 때의 105mm 곡사포와 PF (통신제2벙커 옆) 교통호를 따라 정문 위병소까지 가서 철조망을 열고 나섰다. 정문 앞에서는 "A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정문에서 커브를 돌아 내려가야 마을을 가로 지르는 제법 큰 샛강이 있고 건너가는 다리가 있다. 이 다리를 건너 대대방향으로 조금 가면 바로 성당이다. 중대와"A마을"쪽에서는 총성이 계속 들려왔다. 본격적인 교전이 시작된 듯 했다. 총알이 우리 위로 지나가면서 마치 휘파람소리를 냈다. 행사부대가 막 다리위로 진입하는 순간 요란한 총성과 함께 총알이 날아왔다. 모두 황급히 엎드려 몸을 피했다. 행사부대 인솔책임자는 악명 높은 3소대장이었다.
이 3소대장은 우리 통신반의 225기 박삼례 수병과 시골 ㅂ ㅇ 친구였는데 시골서 헤어진 후 처음으로 월남에서 다시 만난 것이었다. 처음에는 반가운 척 하더니 곧 안면 몰수하고 아주 포악했다. 나중에는 박수병이 "저새끼, 나중에 고향에 내려오면 때려죽일꺼야" 라고 자주 말하곤 했다.
소대장도 처음엔 놀랐지만 곧 상황을 파악, 모두들 다리를 건널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모두들 적의 사격이 두려워 주춤거렸다. 이때 소대장이 나서더니 다리 위를 빠른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총성은 계속 울리는데...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소대장의 모습을 본 우리는 둘씩 짝을 지어 뛰며, 엎드려 기며, 구르며 모두 무사히 모두 건넜다. 참으로 대단한 소대장이었다.
우리는 곧 성당에 도착했다. 중대 쪽에서는 계속해서 총성이 들려왔다.
성당에는 많은 월남 민간인과 월남군이 있었는데 몹시 불안한 표정들이었다.
성당에서 대기하기를 약 2~30분 중대로부터 행사가 취소되었으니 돌아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중대로 되돌아가는 길에 아까 혼났던 다리를 다시한번 어렵게 건넜다. 중대에 다다르자 그동안 최루탄을 사용했는지 눈, 코가 매워 아주 혼났다.
무사히 방석으로 돌아온 나는 동정을 살폈다. 적들은 중대와 "A마을" 사이의 샛강을 사이에 두고 월남군과 대치하여 수시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샛강의 다리로 월남 민간인들이 남녀노소 줄을 지어 아군 쪽으로 건너오고 있었다.

어제 밤사이 "A마을" 이 적의 수중에 넘어간 것이라 했다. 정말 기가 막힌 영화 같은 얘기였다. 피난 나온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적은 월맹정규군과 베트콩 합쳐 모두 약 150명 정도이며 무기는 개인화기외에 기관총, 박격포로 무장했다고 했다. 그 당시 우리 6중대 병력이 총 108명이었으니 적 150명은 실로 굉장한 숫자였다.무서운 위력의 106mm 무반동 총~! 월남군 및 민간인 부상자가 수시로 방석으로 실려와 헬기로 후송되었다.
전투는 점점 더 치열해져 갔다. "A마을" 에서는 이제는 기관총과 박격포까지 쏘아댔다. 중대에서 1개소대 차출 명령이 하달되었다. 각 소대에서 1개 분대씩을 차출하여 3소대장이 지휘하여 중대 아래에서 교전 중인 월남군을 지원하라는 것이었다. 통신반에서는 통신병 한명을 차출해야 했다. 고참들의 서열확인 끝에 이번 차례는 230기 신현기였다. 우리 월남 고참들은 신현기를 불러놓고 무전기를 챙겨주며 현재 상황과 순번을 설명해 주고 무사귀환을 빌며 떠나보냈다. 그날 저녁 신현기가 돌아올 때까지 얼마나 마음을 조였는지 모른다.
(바로 이 신현기를 2000년 11월 26일 실로 30년 만에 극적인 재회를 했고 그 후 지금까지 계속 만나고 있다.)

점점 더 치열해진 상황 속에 소형 헬기(AH-10) 한대가 중대로 오던 중 "A마을" 부근 상공에서 적의 사격을 받고 황급히 돌아가는 것을 보았는데 잠시 후에 대대에서 온 소식이 이 헬기에 월남군의 높은 사람이 오던 중이었는데 미군 조종사 한명이 대퇴부 관통상을 입고 돌아가 2대대에 불시착, 메드백 후송되었다고 했다.

중대에 있는 105mm 곡사포 2문중 하나가 통신제2벙커 바로 옆에 있었다. "A마을"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자리였다. 그런데 포와 "A마을"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근거리 300m 원거리 500m) 곡사포사격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날 오후 들어 월남군들이 포 주변의 둔덕을 허물어 버리고 포신을 수평 아래로 내려 "A마을"을 직사로 겨누어 사격하기 시작했다. 105mm포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엉성한 집이기는 하지만 한발에 집 한 채가 그대로 폭삭 주저앉고 불타 없어졌다. 얼마가지 않아 모든 집들이 무너져 내리고 더 이상 탈 것도 없어 불길이 멈추고 연기만 올랐다..
그래도 적들은 잿더미 사이를 오가며 사격을 가해왔다. 바로 지하실, 땅굴의 위력이었다. 미국이 이기지 못한 월남의 땅굴이었다.
이러한 상황 때문이었을까? 그날의 노획물들을 둘러 보고 있는 참모장 중대 남쪽 저 멀리 높은 하늘에 폭격기 한 대가 나타나더니 까만 점 하나를 떨어뜨렸다. 둥실둥실, 기웃기웃하며 점점 다가왔다. 드디어 중대 OP를 스치듯 지나쳐 그대로 "A마을"로 정확히 떨어졌다. 그 포탄 크기가 사람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실로 거대한 폭발이었다.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왠 걸, 잠시 후 적들은 또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고지 정상의 OP옆에 있는 106mm 무반동총이 산탄을 발사했는데 신관의 시간조절이 잘 안되어 포탄이 아군 진지를 벗어나기도 전에 교통호 바로 위에서 터지는 바람에 아군 3명이 파편상을 입고 메드백 후송되었다.
우리 통신반에는 210기 백재만 수병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조그만 카쎄트레코더를 구입했었다. 백수병은 그 녹음기로 그날의 요란한 총성, 포성 등 정말로 생생한 전투 현장의 소리를 녹음했었는데 그 테이프를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을까? 몹시 궁금하다. 언제라도 백수병을 만난다면 확인하고 싶은 일이다. 드디어 적의 기세가 한풀 꺾인 듯 했고 이때 미군 APC 장갑차 부대가 나타났다.
방석에서는 60mm/81mm 박격포, 106mm 무반동 총, 직사포로 둔갑한 105mm 포들이 정신없이 "A마을"을 두들겼다.
드디어 견디다 못한 적들이 잿더미 속에서 한둘씩 나타나더니 "A마을"북서쪽의 100m정도의 개활지를 가로 질러 그 뒤 정글로 숨어 버렸다. 그 뒤를 이어 계속해서 뛰쳐나와 도주하기 시작 하더니 급기야 수십 명이 한꺼번에 튀어 나와 뛰어 달아났다. 아군의 모든 화력과 미군 장갑차가 불을 뿜었다. 105mm, 106mm가 도주하는 적들의 상공에 산탄을 터뜨렸다. 적들은 마지막 퇴각중에 일부를 희생하면서 정글 속으로 잠적해 버렸다. 마지막 남은 듯한 몇 명이 도주하다 미군 장갑차에 의해 일부가 희생되고 나머지는 역시 정글 속으로 사라졌다. 이때가 오후 다섯시쯤... 드디어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상황이 모두 끝나는 순간이었다.
얼마 후 지원 나갔던 병력이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 정말 반가웠다.

그날 전투에서 적 사살 79명이었고 월남군, 미군 및 민간인의 피해는 잘 모르겠으나 우리6중대의 피해는 부상 3명뿐이었다.
적의 추정 병력 총150명의 약 절반이 희생된 것이었다. 대단한 전과였다.
많은 무기도 노획하였다. 개인 화기뿐만 아니라 기관총, 82mm 박격포에 색깔도 예쁜 핑크색의 중공제 무전기까지 있었다.
그러고 보면 오늘 아침에 중대방석에 떨어진 포탄은 82mm 박격포였던 것이다. 시체를 제외한 모든 노획물은 중대 스트롱으로 집결 나열되었다.

다음날 오후에 여단에서 참모장인가 하는 아주 높은 분이(계급이 대령이었던 것 같음) 전과 확인 차 우리 중대에 온다는 전갈을 받았다. 대대장이 황급히 달려와서 대기했다. 헬기로 도착한 참모장 일행은 중대 스트롱의 노획품을 둘러 본 후 (왼쪽 사진) "A마을"로 가서 현장을 살펴보았다. "A마을"에는 어제 전투에서 사살된 79구의 시체를 한곳에 나란히 모아 놓았는데 정말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참혹한 몰골들이었다. 모든 지상의 집들은 철저하게 파괴되어 온통 잿더미였다. 이때 시체들의 한복판에서 중대장 전령한테 사진을 찍어 달랬는데 사진을 받지는 못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 필름은 필름대로 그냥 가져간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맨위 목차로 가기

 

위문공연....
왼쪽으로 부터 신현기(230기), 가수 박재란, 나 히힛~!
언젠가 대대에서 위문공연이 있었다. 그 당시 한국에서 유명한 연예인들이 많이 왔다.
각 중대는 경계병력 만을 남기고 단독무장으로 행군하여 대대로 구경을 갔다. 정말 오랜만에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었다.
고참들 말이 몇 달전에는 위문공연단이 와서 한창 신나는 중에 대대본부가
적의 공격을 받아 난리가 났었단다. 공연 중에 적의 포탄이 날아와 터지고 총알이 날아 왔으니 오죽했으랴... 특히 여자 연예인들이 어쩔 줄 몰라 무조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불고 하는 통에 아주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런데 230기 신현기가 그날 공연했던 인기정상 가수 박재란과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을 30년이 더 지난 얼마 전 나한테 공개하는 것이 아닌가???
신현기는 그때 앰프병이 친척이어서 그 덕에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때는 고참들의 눈이 무서워 감히 공개하지 못했단다^^;

오른쪽 사진은 신현기의 사진을 빌려다가 신현기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내 사진을 복사해 넣었다가, 아무래도  너무 심한 것 같아 신현기를 반대쪽에 옮겨 놓은 변조된 사진이다... 히힛~!예쁜 음악 기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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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4 ]-<소 두마리, 적 2명 생포....>-

[[실전중 나도 모르게 찍힌 사진 4장중의 하나]] 베트콩의 은거지에서 잠시 휴식중... 집속에 앉아있는 것이 무전기 교신중인 나... 계속되는 작전 속에 꿈같은 위문공연의 즐거움도 잠시, 또 작전에 나서야 했다. 그중 한 작전 때의 일이다.
작전 중 깊은 산중에서 적의 은신처(사진)를 발견했다. 정밀 수색을 했으나 적은 이미 도주한 후였다. 집 주위는 매우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주변 숲도 뒤졌으나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중대장은 숲 속이 자꾸만 의심스러운지 중대본부 병력으로 하여금 숲 속에 일제 사격을 하도록 지시했다. 우리들은 죽 일렬로 늘어서서 숲을 향하여 신나게 쏘아댔다. 탄창 두개를 비웠을 까? 갑자기 숲에서 무언가가 튀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모두들 바짝 긴장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숲에서 튀어나오는 것들은 짐승들이었다~@.@~
이때 뛰쳐나온것들이 닭이었는지, 오리였는지, 아니면 개였는지 돼지였는지 기억이 확실치 않다. 우리들이 어이없어 하는 사이 튀어나온 짐승들은 근처 옆 숲으로 다시 숨어 버리고 말았다.
중대장은 전 중대병력을 동원하여 경계강화와 함께 주위 숲의 수색을 지시했다. 얼마 후 날아온 보고는 적들은 간데없고 숲 속에서 소 두 마리를 발견했다고 했다. 결국 소 두 마리만 영문도 모른체 체포되어 끌려나왔다.
중대장 이하 우리들은 모두 크게 웃었다. 이놈의 나라는 짐승들까지도 VC를 닮아서 찍소리도 안내고 숨어 있다고....^^
소 두 마리의 체포는 대대로 보고 되었고 얼마 후 헬기를 보낼 테니 산채로 실어 보내라는 지시가 왔다. 이리하여 숲 속에 숨어있던 소 두 마리는 헬기에 의해 후송되었다.

이 소들은 여단으로 보내져 도축되어 한 마리는 운반 및 도축비 명목으로 상납되었고 또 한 마리는 대대로, 그중 일부는 우리 중대로 분배되어 작전을 끝내고 방석으로 돌아온 후 전 중대가 포식을 했다.

언젠가 매우 큰 작전 때 (아마 여단급 작전인 듯..) 수백 미터 고지에 착륙하여 중대 진지를 구축하고 다음날부터 있을  수색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오후 늦게 진지 구축이 끝나갈 무렵 저 아래 평지 논 옆 숲에서 난데없이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 주위에서 적 4~5명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날이 곧 어두워 질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다음날 수색조가 어제 그 자리를 가 보니 불을 땐 흔적만 있을 뿐 적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런데 오후 늦게 우리 수색조들이 고지로 돌아 올 무렵 어제 그 자리에서 또 연기가 오르는 게 아닌가??  어제 그놈들이 또 나타난 것이다. 적들은 어두워지면 우리가 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음날 아침, 중대장은 출동하는 수색조들에게 특별 지시를 내렸다. 3개 소대가 수색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1개 소대의 병력을 고지로 철수하는 척 하면서 잠복하도록 한 것이다.
그날 오후 평소와 마찬가지로 수색을 나갔던 병력들이 고지로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아래 그 장소에서 역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때부터 중대장의 무전 지시하에 아래 잠복조들이 움직였다.
고지정상 중대본부에서 육안으로도 어느 정도 알아 볼 수 있는 거리였다.
중대장은 쌍안경으로 빤히 내려다보며 잠복조를 지휘했다.

"통신병, 응답하지 말고 내말 들리면 손들어!"
"그대로 현 자세에서 우로 90도 돌아~!"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소대장 바꿔~!"
"통신병으로부터 1시 방향 약 100m 전방에 적 4~5명이 있다. 일단 대기하라~!"
얼마 후 근처 나무위에 올라갔던 적2명이 내려와 연기 나던 숲 속으로 들어갔다.
"1시 방향으로 50m 전진하라~!"
"자세를 낮추고 20m 전진하라~!"
"현재 바로 앞에 있는 담장 다음다음 뒤에 적들이 있다. 자세를 최대한 낮추고 다음 숲담장까지 전진하라~!"

[[실전중 나도 모르게 찍힌 사진 4장중의 하나]] 베트콩의 은거지에서 잠시 휴식중... 앞에 주저 앉아 무언가를 먹고 있는 것이 바로 동기 226기 김태진이다. 8월4일 방석에서 전사했다. 안쪽에서 한창 무전기로 교신중인 것이 나~! 그 왼쪽이 중대장이다.(성이 윤씨였다.) 이제 적과의 거리는 불과 20m 정도, 적과의 사이에는 두 개의 숲담장이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중대장의 마지막 명령이 하달되었다.

"통신병, 무전기 소리 죽이고, 다음 숲담장까지 포복으로 전진한 다음 일시에 숲을 통과하여 적을 제압 생포하라~! 적들은 숲담장 바로 너머에 있다~!"

중대장 이하 우리 모두는 고지위에서 가슴을 졸이며 빤히 내려다 보고있었다. 포복으로 다가가는 것이 고지위에서는 바로 내려다보였다. 날은 점점 어두워 지고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 숲까지 다가갔다. 곧이어 전 병력이 일시에 숲을 통과 돌격하였다.
....... 중대장이하 우리 모두는 숨을 죽인 채 산아래를 보고 있었다.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시시각각 어두워지고 있었다. 곧 깜깜해 질 텐데.....
이때 적막을 깨고 요란한 총성이 들려왔다. 동시에 무전기에서 숨 막히는 통신병의 보고가 들려 왔다.

"적 2명 생포! 나머지 도주,  현재 교전 중~!"    중대장이 지시했다.
"추격하지 말고 위협사격으로 빠져 나오라! 고지로 귀환하라! 곧 어두워진다, 포로를 놓치지 말라~!"

이때 벌써 산 아래가 고지에서는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워져 있었다. 중대에서는 60mm, 81mm 박격포로 조명탄을 있는 대로 쏘아 올렸다. 어두운 속에서 피아간에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적들이 더 이상은 쫒아오지 않고 멀리서 총을 쏘아대기만 했다.
조명탄, 신호탄, 무전기의 도움으로 잠복조가 중대 고지로 귀환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생포된 적 두 명은 손을 뒤로하여 끈으로 묶여 있었고 둘 다 맨발이었다. 우리 잠복조들은 여기저기 찢기고 깨지고 엉망이었으나 생포된 두 명은 별로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어보였다. 새까맣고 비쩍 마른 포로들, 소지품 조사결과 한명은 NVA(월맹정규군)이고 다른 한명은 VC(베트콩)였다. 중대 민사하사(월남어 교육을 받아 통역 및 대민 업무를 수행했음)의 힘을 빌려 밤늦게까지 취조가 있었다. 결국 그들의 무기를 숨겨놓은 곳을 알아냈다. 다음날 수색하기로  하고 둘은 팔다리를 로프로 결박하여 중대상황실 텐트 바로 옆 나무에 묶어 놓고, 경비 한명과 통신병이 밤새 지켰다. 내 근무시간에 보니 포로들이 모로 누운 채로 몸을 비비 꼬고 있었다. 모기 때문이었다. 그 독한 월남모기에 무방비상태로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도 불쌍하여 스프레이 모기약을 듬뿍 뿌려 주었다.

다음날 아침 포로들을 앞세우고 무기 노획에 나섰다. 산을 내려가는 도중 갑자기 포로중의 하나가 양손을 뒤로 묶인 채로 튀어 옆의 숲 속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중대원들이 뒤쫓았지만 어찌나 다람쥐같이 빠른지 까딱하다간 놓칠 것 같았는데 다행이도 포승줄의 끝매듭이 수풀에 걸려 엉키면서 이놈이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고 붙잡혔다. 물론 죽거나 말거나 사격을 했으면 쉽게 잡았겠으나 이미 생포 보고가 상부로 올라간 상태니 그럴 수도 없었다. 이놈 많이 맞았다~@.@~....
결국 포로 둘을 끌고 다닌 끝에 산 아래 논 옆의 도랑 물속에서 아카보소총 AK-47 두 정을 건져 올렸다.
이때 놀란 것은 이 총의 안전스위치에 '
', ' ' 이라고 한글로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북한에서 제작된 소총이었던 것이다.
섬뜩했다. 조국 분단의 현실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 모든 상황은 상급부대로 보고 되었고 얼마 후 날아온 헬기로 포로들은 후송되었다.

2003년도에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발행한 "베트남 전쟁과 한국군"의 청룡부대편을 보고 위의 작전이 1971년 04월 24일~05월3일까지 치러진 황룡14-2호작전(여단작전)이었고, 적군 2명을 생포했던 소대가 2소대(소대장: 정연길)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맨위 목차로 가기


다낭 휴양소...

나, 중대 병기병 김성호(?), 보급병 차정학(226), 신현기(230기) 어~ 쭈~타~!
히히힛~! 쭈~타~! 월남에서는 여단작전 같은 큰 작전을 치르고 나면
다낭 바닷가에 준비되어 있는 휴양소에서 2박3일 푹~ 쉴 수 있게 해 준다. 월남에 있는 동안에 나는 딱 한번 휴양소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전쟁의 공포, 불침번에서 해방되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물놀이도 할 수 있고,
시원한 야자수 그늘에서 술한잔하며 얼마든지 쉴 수 있다.  또, 도시와는 떨어져 있는 오지의 전투부대원들한테는 이때가 말로만 듣던 다낭 시내의 시장, 번화가, 유흥가, 환락가 등 어디든지 가보고 경험해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러나 나는 하늘에 맹세코 다낭 시내에 나가 보지도 못했다. 다시 말하면 꽁까이 손목도 한번 잡아 보지 못했다는 얘기다. 휴양소 안에서 그냥 튜브나 타고 술이나 마시며 놀아야 했다. 왜? 답은 너무나 간단하다.
너무나 쫄병이었기 때문에 ㅠ.ㅠ

그러나 나는 너무나 많이 안다. 왜????
주워 들은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에 ㅋ ㅋ ㅋ ~!

작전-[ 5 ]-<낙오병 구출작전....>-

언젠가 중대방석에서 서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험한 산악지역으로 작전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약 일주일간의 작전이 모두 끝나고 헬기로 철수해 방석으로 되돌아 왔다. 그런데 잠시후 중대 본부로 다급한 보고가 들어 왔다. 2소대(?)에서 작전에 같이 나갔던 소대원 한명이 보이지 않는데, 아무래도 조금 전 철수지점에서 헬기를 못 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중대가 발칵 뒤집혔다. 이런, 이런~~ 중대장은 끌끌 혀를 찼다. 모두들 방석 안을 모두 뒤지고 앵글리코맨에게 철수에 사용된 헬기를 조사하도록 했다. 그러나 오리무중이었다. 중대장은 철수했던 지점으로 특공대를 보내기로 결심, 1개 소대 규모의 특공대를 급히 편성, 출발시켰다. 헬기로는 불과 몇분 거리였지만 산악지대를 걸어서는 몇시간이 걸릴 지 알 수 없었다. 문제는 어둡기 전에 돌아와야 하는 것이었다. 특공대가 출발한 후 중대본부에는 특공대와 연락되는 무전기 주위에 모여 시시각각 들어오는 특공대의 보고에 온 촉각을 기울이고 있었다. 드디어 철수지점에 도착했다는 보고와 함께 곧 이어서 낙오병을 찾았다는 보고가 들려왔다. 우리들은 모두 야~!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었다. 방석에 도착하기 전에 어두워질 것이었다. 중대에서는 조명탄을 쏘아 올릴 준비를 했다. 특공대가 방석에 도착하기 전에 날은 어두워 졌다. 중대에서는 60mm, 81mm 박격포로 조명탄을 쉴새 없이 쏘아 올려 특공대를 유도했고 마침내 특공대가 방석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낙오병은 신병이 아닌 고참이었다. 철수지점에서 헬기를 기다리던 중 잠시 근처 숲 속 그늘진 곳에서 쉬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었는데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중대가 철수한 뒤였다고 했다. 그때부터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며 숲 속에 숨어 오직 아군의 구조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단다. 특공대가 처음 그를 찾았을 때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있었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고 전해 주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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